김광균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와사등」 모더니즘 시인

시인 김광균(金光均)이 1993년 11월 23일 서울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광균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9세였고, 오랜 지병에 따른 것이었다. 시집 「와사등」으로 한국 모더니즘 시를 대표하는 시인이다.

  • 사망일 — 1993년 11월 23일
  • 사망 장소 —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
  • 사망 원인 — 숙환
  • 향년 — 79세 (1914년 1월 19일생)
  • 대표작 — 「와사등」(1939), 「기항지」, 「은수저」
김광균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14년 출생, 1993년 향년 79세로 별세한 시인

김광균 프로필

이름김광균 (金光均)
출생1914년 1월 19일, 경기도 개성
사망1993년 11월 23일, 서울 (향년 79세)
사인숙환
직업시인 · 기업인
학력송도상업고등학교 졸업
등단1926년 「중외일보」에 시 발표
대표작「와사등」(1939), 「기항지」(1947), 「황혼가」(1957)
수상대한민국문화예술상, 국민훈장 동백장

1930년대 후반에 이름을 알린 뒤 해방과 전쟁을 지나며 오래 시를 썼다. 다만 활동이 이어진 것은 아니어서, 한동안 붓을 놓고 사업에 매달린 시기가 길었다.

김광균 사망 원인

김광균 사망 원인은 오랜 지병이었다. 1993년 11월 23일 밤,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일흔아홉 살이었다.

병상에 오래 있었으나 마지막은 병원이 아니라 집이었다. 그해 봄까지도 문단 모임에 이름이 오르내렸다.

부고는 이튿날 여러 신문 문화면에 실렸다. 1930년대 모더니즘 시 세대 가운데 오래 살아남은 축이었기에 한 시대가 닫히는 일로 다뤄졌다.

김광균 사망 이후

교과서에 남았다. 「와사등」과 「추일서정」, 「설야」는 지금도 국어 교과서와 문제집에 실려 있어 이름을 모르는 세대가 드물다.

연구 쪽에서도 자리가 굳었다. 「시는 회화다」라는 그의 태도는 한국 모더니즘 시를 설명할 때 빠지지 않는 대목이 됐다.

고향 개성은 갈 수 없는 곳이 됐지만, 개성을 배경으로 쓴 초기 시들이 그 시절의 풍경을 남겨 두었다.

「와사등」과 회화적인 시

1939년에 낸 첫 시집이다. 제목의 와사등은 가스등을 뜻한다. 도시의 밤과 불빛, 유리창과 기차역 같은 소재가 잇따라 나온다.

그의 시가 특별했던 것은 소리보다 그림을 앞세웠다는 점이다. 「분수처럼 흩어지는 푸른 종소리」처럼 귀로 듣는 것을 눈으로 보이게 바꿔 놓는 표현이 자주 나온다.

  • 「와사등」 (1939) — 첫 시집
  • 「기항지」 (1947)
  • 「황혼가」 (1957)
  • 「추일서정」 — 교과서 수록 대표 시
  • 「설야」 — 눈 내리는 밤을 그린 시
  • 「은수저」 — 아이를 잃은 뒤 쓴 시

이런 방식을 공감각이라 부른다. 감정을 직접 말하는 대신 풍경으로 옮겨 놓는 쪽을 택했고, 그래서 차갑고 쓸쓸한 인상이 남는다.

「은수저」가 남긴 자리

어린 자식을 먼저 보낸 뒤 쓴 시다. 「산이 저문다 노을이 잠긴다」로 시작해 빈 밥상에 놓인 은수저 하나로 끝난다.

도시의 풍경을 그리던 시인이 가장 사적인 자리로 내려온 작품이다. 슬픔을 설명하지 않고 물건 하나에 얹어 두는 방식은 여기서도 그대로다.

교과서에 실린 그의 시 가운데 학생들이 가장 오래 기억한다고 꼽히는 작품이기도 하다.

시인이면서 사업가였던 삶

한국전쟁 중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가업인 무역회사를 맡았다. 그때부터 20년 넘게 시를 거의 쓰지 않았다.

  1. 1914년 1월 19일 — 경기도 개성 출생
  2. 1926년 — 「중외일보」에 시를 발표하며 등단
  3. 1939년 — 첫 시집 「와사등」
  4. 1947년 — 「기항지」
  5. 1950년대 — 가업을 맡으며 사실상 절필
  6. 1993년 11월 23일 — 서울 자택에서 사망 (향년 79세)

1980년대에 다시 시집을 냈다. 문단은 그를 잊지 않았고, 뒤늦은 복귀에도 초기의 그림 같은 시법이 그대로 남아 있다는 평이 따랐다.

시를 접었던 세월을 두고 그는 여러 자리에서 아쉬움을 내비쳤다. 다만 그 시기에도 문인들과의 왕래는 끊지 않았고, 후배 시인들의 출판을 조용히 도왔다는 이야기가 여럿 남아 있다.

그래서 그의 이력은 두 겹으로 읽힌다. 한쪽에는 1930년대 모더니즘 시의 대표작이 있고, 다른 한쪽에는 전쟁 뒤 가족을 떠맡은 생활인의 시간이 있다. 두 시기 사이의 공백이 오히려 그의 시를 설명하는 조건이 된다.

자주 묻는 질문

김광균은 언제 사망했나요?

김광균은 1993년 11월 23일 서울 종로구 부암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광균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9세였습니다.

김광균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광균 사망 원인은 오랜 지병에 따른 숙환입니다. 병상에 오래 있었으나 마지막은 병원이 아니라 서울 부암동 자택이었고, 부고는 이튿날 여러 신문 문화면에 실렸습니다.

「와사등」은 어떤 시집인가요?

1939년에 나온 첫 시집으로 제목의 와사등은 가스등을 뜻합니다. 도시의 밤과 불빛을 소재로 삼아 소리를 시각으로 옮기는 공감각 표현을 앞세운 모더니즘 시집입니다.

김광균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시집으로는 「와사등」(1939)과 「기항지」(1947)가 있고, 개별 작품으로는 교과서에 실린 「추일서정」과 「설야」, 아이를 잃은 뒤 쓴 「은수저」가 널리 읽힙니다.

왜 오랫동안 시를 쓰지 않았나요?

한국전쟁 중 동생이 세상을 떠난 뒤 가업인 무역회사를 맡았기 때문입니다. 그때부터 20년 넘게 작품을 거의 내지 않다가 1980년대에 다시 시집을 냈습니다.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