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시춘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신라의 달밤」 작곡가

작곡가 박시춘(본명 박순동)이 1996년 6월 30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시춘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2세였고, 사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애수의 소야곡」과 「신라의 달밤」을 비롯해 3천여 곡을 남긴 작곡가다.

  • 사망일 — 1996년 6월 30일
  • 사망 장소 — 서울
  • 사망 원인 —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음 (보도는 숙환으로 전함)
  • 향년 — 82세 (1913년 10월 28일생)
  • 남긴 곡 — 3천여 곡
박시춘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13년 출생, 1996년 향년 82세로 별세

박시춘 프로필

이름박시춘 (朴是春 / 본명 박순동)
출생1913년 10월 28일, 경상남도 밀양
사망1996년 6월 30일, 서울 (향년 82세)
사인공식 확인되지 않음
직업작곡가 · 영화감독 · 제작자
악기기타 · 트럼펫 · 바이올린 · 색소폰
활동 기간1930년대 ~ 1990년대
대표곡「애수의 소야곡」(1938), 「가거라 삼팔선」(1946), 「비 내리는 고모령」(1948), 「신라의 달밤」(1948), 「낭랑 십팔세」(1949), 「굳세어라 금순아」(1953), 「이별의 부산정거장」(1954)
수상1982년 문화훈장 (대중가요 작곡가로는 처음)

일제강점기부터 1950년대까지 한국 대중가요의 주요 곡 상당수가 그의 손에서 나왔다. 곡을 쓰는 데 그치지 않고 직접 연주하고 영화를 만들기도 한 만능형에 가까운 사람이었다.

박시춘 사망 원인

박시춘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당시 자료는 오래 앓아 온 병으로 서울의 한 병원에서 눈을 감았다고만 적고 있다. 구체적인 병명이 발표된 기록은 확인되지 않는다.

박시춘 사망 이유를 두고 자료마다 표현이 조금씩 다르다. 숙환으로 적은 곳이 있고 노병으로 적은 곳이 있는데, 둘 다 특정 질환을 가리키는 말은 아니다.

그의 죽음은 1996년 6월 30일 저녁에 알려졌다. 여든두 해를 살았고, 마지막까지 대중가요계의 원로로 남아 있었다. 유해는 경기도 남양주에 안장됐다.

박시춘 사망 이후 이어진 논의

세상을 떠난 뒤 그의 이름은 두 방향으로 계속 불렸다. 한쪽에서는 노래가 남았고, 다른 한쪽에서는 일제강점기 행적이 정리 대상이 됐다.

태평양전쟁 시기에 「혈서지원」 등 전시 체제를 뒷받침한 노래를 작곡한 사실이 확인돼, 2008년 친일인명사전 수록 예정자 명단과 2009년 친일반민족행위 705인 명단에 이름이 올랐다.

고향 밀양에서 2002년 시작된 박시춘가요제는 이 사실이 알려진 뒤 밀양아리랑가요제로 이름을 바꿨다. 생가와 노래비는 그대로 남아 있다.

「애수의 소야곡」과 남인수

1938년에 나온 「애수의 소야곡」은 남인수가 불렀다. 이 한 곡으로 작곡가와 가수 둘 다 이름이 굳었고, 이후 두 사람은 오래 짝을 이뤘다.

같은 시기 그는 김정구가 부른 「왕서방 연서」에도 곡을 붙였다. 우는 노래와 웃기는 노래를 같은 손으로 썼다는 뜻이다.

그를 두고 기타 솜씨와 선율 감각이 뛰어나다는 평이 따라다녔다. 여러 악기를 다뤘던 이력이 곡을 만드는 방식에 그대로 들어가 있었다.

「굳세어라 금순아」와 피란지에서 나온 노래

한국전쟁을 지나며 그가 쓴 곡은 그 시절의 기록이 됐다. 흥남에서 헤어진 사람을 부르는 「굳세어라 금순아」가 대표적이다.

  • 「애수의 소야곡」 (1938) — 남인수 가창, 출세작
  • 「가거라 삼팔선」 (1946) — 분단을 정면으로 다룬 노래
  • 「비 내리는 고모령」 (1948) — 대구 고모령을 배경으로 함
  • 「신라의 달밤」 (1948) — 경주를 노래한 대표곡
  • 「낭랑 십팔세」 (1949) — 해방 직후 인기곡
  • 「굳세어라 금순아」 (1953) — 피란과 이산을 담은 노래
  • 「이별의 부산정거장」 (1954) — 환도기의 정서를 담음

분단과 피란, 환도로 이어지는 10년이 이 목록 안에 그대로 들어 있다. 노래가 시대를 따라간 것이 아니라, 시대가 노래로 남은 쪽에 가깝다.

박시춘 약력 — 데뷔부터 마지막까지

출발 — 1930년대

밀양에서 나고 자랐다. 유랑 극단의 악사와 영사 기사로 만주와 일본을 오가며 연주를 익혔고, 1938년 「애수의 소야곡」으로 작곡가로 자리를 잡았다.

전성기 — 1940~1950년대

해방과 전쟁을 지나며 대표곡이 잇따라 나왔다. 1943년부터는 영화 음악도 맡아 곡과 화면을 함께 다뤘다.

영화와 단체 활동 — 1950~1960년대

1958년 오향영화사를 세우고 「삼등호텔」과 「딸 칠형제」를 직접 연출했다. 1961년에는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을 맡았다.

만년 — 1980~1990년대

1982년 대중가요 작곡가로는 처음으로 문화훈장을 받았다. 1996년 6월 30일 서울에서 눈을 감았다.

  1. 1913년 10월 28일 — 경상남도 밀양 출생
  2. 1938년 — 「애수의 소야곡」 발표
  3. 1943년 — 영화 음악 감독으로 데뷔
  4. 1953년 — 「굳세어라 금순아」 발표
  5. 1958년 — 오향영화사 설립, 영화 연출
  6. 1961년 — 한국연예협회 초대 이사장
  7. 1982년 — 문화훈장 수훈
  8. 1996년 6월 30일 — 사망 (향년 82세)

자주 묻는 질문

박시춘은 언제 사망했나요?

박시춘은 1996년 6월 30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1982년 대중가요 작곡가로는 처음 문화훈장을 받은 뒤 원로로 지내던 시기였고, 박시춘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2세였습니다.

박시춘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박시춘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자료에 따라 숙환 또는 노병으로 적고 있을 뿐 구체적인 병명이 발표된 기록은 확인되지 않습니다.

박시춘은 몇 살에 사망했나요?

박시춘은 1913년 10월 28일에 태어나 1996년 6월 30일 세상을 떠났으므로 향년 82세입니다. 1938년 「애수의 소야곡」으로 이름을 알린 뒤 예순 해 가까이 곡을 썼습니다.

박시춘의 대표곡은 무엇인가요?

박시춘의 대표곡은 「애수의 소야곡」과 「신라의 달밤」입니다. 그 밖에 「가거라 삼팔선」 「비 내리는 고모령」 「굳세어라 금순아」 「이별의 부산정거장」이 있으며, 평생 3천여 곡을 작곡했습니다.

「신라의 달밤」은 누가 작곡한 노래인가요?

작곡가 박시춘입니다. 1948년에 나온 곡이며, 같은 시기 「가거라 삼팔선」 「비 내리는 고모령」도 그의 작품이어서 해방 직후 대중가요의 상당 부분이 그의 손에서 나왔습니다.

참고한 자료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