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운봉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선창」 부른 원로가수

가수 고운봉이 2001년 8월 1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숙환으로 세상을 떠났다. 고운봉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1세였다. 1941년에 낸 「선창」으로 60년을 불린 원로가수다.

  • 사망일 — 2001년 8월 1일
  • 사망 원인 — 숙환
  • 향년 — 81세 (1920년생)
  • 본명 — 고명득
  • 대표곡 — 「선창」 · 「백마야 가자」
고운봉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20년 출생, 2001년 향년 81세로 별세한 「선창」 가수

고운봉 프로필

이름고운봉 · 본명 고명득 (高明得)
출생1920년, 충청남도 예산
사망2001년 8월 1일, 서울 강동구 (향년 81세)
사인숙환
직업가수 · 트로트 가수
데뷔1938년, 태평레코드 만주 순회공연
대표곡「선창」 · 「백마야 가자」 · 「홍등야곡」 · 「인생은 육십부터」
소속조선악극단 등

구성진 목소리로 알려졌다. 서민의 처지를 담은 노랫말을 주로 불러 「서민의 가수」라는 말이 따라다녔다.

고운봉 사망 원인

고운봉 사망 원인은 숙환이다. 2001년 8월 1일 서울 강동구의 한 병원에서 여든하나에 세상을 떠났다.

병명까지는 공표되지 않았다. 당시 보도는 「숙환」이라는 표현에서 멈춰 있다.

오래 앓았다는 뜻이다. 갑작스러운 일이 아니라 병원 생활이 이어진 끝의 일이었다.

같은 해 여름에 원로가수 두 사람이 떠났다. 이틀 전인 7월 30일에 황금심이 세상을 떠나, 일제강점기에 데뷔한 세대가 한꺼번에 정리되는 시기였다.

고운봉 사망 이후

「선창」이 남았다. 부고 기사의 제목이 대부분 이 곡 이름으로 나갔을 만큼 그를 대신하는 노래다.

노래방에서 계속 불린다. 발표된 지 여든 해가 넘었는데도 중장년층 선곡 목록에서 빠지지 않는다.

고향에서 기리는 일이 이어졌다. 충남 예산에서는 지역이 배출한 가수로 그를 기록하고 있다.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불렀다. 트로트 무대에서 「선창」은 원곡 가수를 몰라도 가락은 아는 곡으로 자리 잡았다.

음원은 복각본이 중심이다. 1940년대 녹음이라 원반이 온전하지 않아, 지금 듣는 것은 대부분 나중에 다시 옮긴 판이다.

「선창」

항구를 배경으로 한 노래다. 떠나는 배와 남는 사람을 한 장면에 놓았다.

제목이 뜻하는 곳은 배를 대는 자리다. 지금은 잘 쓰지 않는 말이라 제목만 보고는 무슨 뜻인지 모르는 경우가 많다.

가락이 느리고 굵다. 빠르게 넘어가는 곡이 아니라 한 음을 길게 끌어 부르는 쪽이고, 그 창법이 이 노래의 인상을 만들었다.

시대가 겹친다. 광복 전에 나온 노래라 그 시절의 이별 정서를 읽는 자료로도 자주 인용된다.

만주 순회공연에서 시작했다

1938년에 길이 열렸다. 태평레코드사의 만주 순회공연을 따라나섰다가 가수가 됐다.

오디션을 거친 데뷔가 아니다. 공연을 따라다니다 기회를 얻은 쪽에 가깝고, 그 시절 가수들의 흔한 입문 경로이기도 했다.

  1. 1920년 — 충청남도 예산 출생
  2. 1938년 — 태평레코드 만주 순회공연으로 데뷔
  3. 1941년 — 「선창」 발표
  4. 1940~1950년대 — 조선악극단 등에서 활동
  5. 2001년 8월 1일 — 숙환으로 사망 (향년 81세)

악극단에서 실력을 쌓았다. 노래만 부르는 자리가 아니라 연기와 무대를 함께 배우는 곳이라, 이 시기 가수들의 무대 장악력이 여기서 나왔다.

예산이 기억하는 이름

충남 예산 출신이다. 지역에서 그를 향토 인물로 정리해 두고 있다.

지역 기록이 자료를 메운다. 전국지 부고는 짧았지만 향토 문화 자료 쪽에 활동 이력이 비교적 자세히 남아 있다.

노래 제목이 지역 행사에 쓰인다. 고향에서 그의 이름과 대표곡을 내건 자리가 이어지고 있다.

이런 경우가 드물지 않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옛 가수의 생몰 정보가 향토 자료에서만 확인되는 일이 종종 있다.

중앙 언론은 대표곡 한 줄로 끝낸다. 반면 지역 자료는 언제 태어나 어느 학교를 다녔는지까지 적어 두는 편이라, 사실 확인에는 이쪽이 더 쓸모가 있다.

고향을 노래한 곡도 남겼다. 예산과 충청 지역을 소재로 한 노래가 있어, 지역에서 그를 기리는 근거가 노래 안에도 있는 셈이다.

같은 세대 가수들과 비교하면 활동이 길었다. 1938년에 시작해 1990년대까지 무대에 섰으니 60년 가까이를 가수로 보냈다.

한 곡으로 기억되는 가수다. 여러 곡을 남겼지만 사람들은 제목 하나를 먼저 떠올리고, 그 뒤에 이름을 붙인다.

자주 묻는 질문

고운봉은 언제 사망했나요?

2001년 8월 1일 서울 강동구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고운봉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1세였고, 1920년 충청남도 예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고운봉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고운봉 사망 원인은 숙환입니다. 병명까지는 공표되지 않았고, 당시 보도도 「숙환」이라는 표현에서 멈춰 있습니다. 오래 앓은 끝의 일이었습니다.

「선창」은 어떤 노래인가요?

1941년에 발표한 곡으로, 항구에서 떠나는 배와 남는 사람을 한 장면에 담았습니다. 제목의 「선창」은 배를 대는 자리를 뜻하는 말이며 지금은 잘 쓰지 않습니다.

본명이 무엇인가요?

고명득입니다. 「고운봉」은 가수로 활동하면서 쓴 예명이며, 지금은 본명보다 예명으로만 기억됩니다. 당시 가수들이 예명을 쓰는 일은 아주 흔했습니다.

어떻게 가수가 됐나요?

1938년 태평레코드사의 만주 순회공연을 따라나섰다가 가수가 됐습니다. 오디션을 거친 데뷔가 아니라 공연을 따라다니다 기회를 얻은 쪽이며, 당시 가수들의 흔한 입문 경로였습니다.

참고한 자료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