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단마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아리랑 목동」 원조 가수

가수 박단마가 1992년 1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단마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1세였다. 응원가로 지금도 불리는 「아리랑 목동」을 처음 취입한 가수다.

  • 사망일 — 1992년 1월 23일
  • 사망 장소 — 미국 로스앤젤레스
  • 사망 원인 — 심장 수술 뒤 상태가 악화됨
  • 향년 — 71세 (1921년생)
  • 대표곡 — 「아리랑 목동」 · 「슈샤인 보이」
박단마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21년 출생, 1992년 향년 71세로 별세한 「아리랑 목동」 원조 가수

박단마 프로필

이름박단마 (朴丹馬)
출생1921년, 경기도 개성부 (생일은 확인되지 않음)
사망1992년 1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향년 71세)
사인심장 수술 뒤 상태 악화
직업가수 · 연극배우 · 뮤지컬배우
데뷔1937년 6월, 빅타레코드
데뷔곡「상사 구백 리」 · 「날 두고 진정 참말」
대표곡「아리랑 목동」 · 「슈샤인 보이」 ·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1950년대까지 활동했다. 활동 기간이 20년을 넘어, 유성기 음반부터 전후 가요까지 걸쳐 있는 이력이다.

박단마 사망 원인

박단마 사망 원인은 심장 수술 뒤 상태가 나빠진 것이다. 1992년 1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일흔하나에 세상을 떠났다.

수술 뒤 수혈을 받지 않았다.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본인의 결정이었다고 전해진다.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서 일어난 일이다. 당시 국내 언론이 다룬 분량이 많지 않아 경위를 자세히 확인할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말년을 미국에서 보냈다. 활동을 접은 뒤 이주해 지냈고, 세상을 떠난 곳도 그곳이다.

박단마 사망 이후

노래가 이름보다 오래 남았다. 「아리랑 목동」은 지금도 운동장에서 불리지만 원곡 가수를 아는 사람은 많지 않다.

가요사를 정리하는 글에서 이름이 다시 나온다. 유성기 시대에 서양식 창법을 가져온 가수로 언급되는 자리다.

남은 음원은 복각본 중심이다. 1930~1950년대 녹음이라 원반 상태가 좋지 않고, 지금 들을 수 있는 것은 대부분 나중에 다시 옮긴 판이다.

영상 자료는 사실상 없다. 활동 시기가 텔레비전 이전이라 무대 모습을 확인할 방법이 남아 있지 않다.

「아리랑 목동」

1950년대에 발표한 곡이다. 이 노래를 처음 취입한 사람이 그다.

뒤에 여러 가수가 다시 불렀다. 김치캣과 백일희가 이어 취입하면서 여러 판본이 생겼고, 그러다 보니 원곡 가수가 누구인지 헷갈리는 경우가 많다.

지금은 응원가로 더 익숙하다. 경기장에서 개사해 부르는 일이 잦아, 원래 가사를 아는 사람보다 가락만 아는 사람이 훨씬 많다.

빠르고 밝은 곡이다. 전후에 나온 노래 가운데 리듬이 경쾌한 쪽이라 따라 부르기 쉬웠고, 그 점이 오래 살아남은 이유로 꼽힌다.

유성기 시대의 데뷔

어린 시절부터 연극 무대에 섰다. 1934년에는 경성방송국에 나가 노래를 불렀다.

정식 데뷔는 1937년 6월이다. 빅타레코드에서 「상사 구백 리」와 「날 두고 진정 참말」을 취입했다.

  1. 1921년 — 경기도 개성부 출생
  2. 1934년 — 경성방송국 출연
  3. 1937년 6월 — 빅타레코드에서 데뷔
  4. 1930년대 후반 —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등 발표
  5. 1950년대 — 「슈샤인 보이」 · 「아리랑 목동」 발표
  6. 1992년 1월 23일 — 미국에서 사망 (향년 71세)

「아이고나 요 맹꽁」도 이 시기의 곡이다. 「맹꽁이 타령」으로 더 알려졌고, 익살스러운 노랫말로 인기를 얻었다.

응원가가 된 노래

원곡보다 개사판이 널리 퍼진 경우다. 가락은 남고 가사는 상황에 맞춰 바뀌는 방식으로 계속 쓰였다.

학교와 경기장이 주된 무대가 됐다. 응원 구호를 얹기 좋은 박자라 세대가 여러 번 바뀌는 동안에도 계속 불렸다.

그 결과 곡은 알려지고 가수는 잊혔다. 1950년대 가요 가운데 이런 경로를 밟은 곡이 몇 있는데, 이 노래가 그 대표적인 예다.

「슈샤인 보이」도 함께 기억된다. 전후 거리에서 구두를 닦던 아이들을 소재로 한 곡이라, 그 시대를 설명할 때 자주 인용된다.

두 곡 다 밝은 가락에 실려 있다. 전쟁 직후의 궁핍한 풍경을 다루면서도 처지지 않는 리듬을 택한 점이 이 시기 그의 노래에서 되풀이되는 특징이다.

당시 여성 가수가 무대에 서는 일은 지금처럼 자연스럽지 않았다. 열 몇 살에 음반을 내고 방송에 나간 이력은 그 시기 기준으로 드문 축에 든다.

자주 묻는 질문

박단마는 언제 사망했나요?

1992년 1월 23일 미국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단마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1세였고, 1921년 경기도 개성부에서 태어났습니다.

박단마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박단마 사망 원인은 심장 수술을 받은 뒤 상태가 나빠진 것입니다. 수술 뒤 수혈을 받지 않았는데, 자신의 종교적 신념에 따른 본인의 결정이었다고 전해집니다.

「아리랑 목동」의 원곡 가수인가요?

그렇습니다. 이 곡을 처음 취입한 사람이 박단마이며, 이후 김치캣과 백일희가 다시 부르면서 여러 판본이 생겨 원곡 가수가 헷갈리는 경우가 많습니다.

언제 데뷔했나요?

1937년 6월 빅타레코드에서 「상사 구백 리」와 「날 두고 진정 참말」을 취입하며 데뷔했습니다. 그전인 1934년에는 경성방송국에 출연해 노래를 불렀습니다.

다른 대표곡은 무엇이 있나요?

「슈샤인 보이」와 「나는 열일곱 살이에요」, 그리고 「맹꽁이 타령」으로 알려진 「아이고나 요 맹꽁」이 있습니다. 전후 거리 풍경을 담은 곡으로 자주 인용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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