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병호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아주까리 등불」 가수
가수 최병호(崔丙浩)가 1994년 2월 21일 세상을 떠났다. 최병호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7세였고, 사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41년 「아주까리 등불」로 이름을 알린 일제강점기 가수다.
- 사망일 — 1994년 2월 21일
- 사망 원인 —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음
- 향년 — 77세 (1916년 6월 19일생)
- 고향 — 전라남도 무안
- 대표곡 — 「아주까리 등불」(1941)

목차
최병호 프로필
| 이름 | 최병호 (崔丙浩) |
|---|---|
| 출생 | 1916년 6월 19일, 전라남도 무안 |
| 사망 | 1994년 2월 21일 (향년 77세) |
| 사인 | 공식 확인되지 않음 |
| 직업 | 가수 |
| 데뷔 | 1940년 오케레코드 콩쿠르 입상 |
| 대표곡 | 「아주까리 등불」(1941) |
| 그 밖의 곡 | 「십년이 하룻밤」, 「유정고향」, 「호남의 사나이」 등 |
| 활동 시기 | 1940년대 ~ 1950년대 |
일제강점기 말에 데뷔해 해방을 지나 노래한 세대다. 유성기 음반이 대중음악의 전부이던 시절에 목소리를 남겼다.
최병호 사망 원인
최병호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4년 2월 21일 일흔일곱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확인되고, 병명이나 경위를 밝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무대에서 물러난 지 오래된 뒤였다. 1950년대 이후로는 공개 활동이 거의 없어 소식이 지면에 오르는 일이 드물었다.
부고도 크게 다뤄지지 않았다. 그의 이름이 다시 정리된 것은 옛 가요를 되짚는 연구와 칼럼이 나오면서부터다.
최병호 사망 이후
가요 연구자들이 그를 다시 불러냈다. 일제강점기 대중가요를 정리하는 작업에서 「아주까리 등불」은 빠지지 않는 곡이다.
신문 연재로도 다뤄졌다. 옛 가요를 한 곡씩 짚어 가는 칼럼이 그의 이름을 제목에 걸고 두 회에 걸쳐 이야기를 풀었다.
음원도 남아 있다. 유성기 음반을 복각한 자료가 있어 지금도 그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
「아주까리 등불」이라는 노래
1941년에 나왔다. 데뷔한 이듬해의 곡이고, 그의 이름을 대중에게 알린 노래다.
아주까리 기름으로 켠 등불은 전기가 닿지 않던 시골집의 불빛이다. 그 희미한 불빛을 두고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정서가 노래의 뼈대를 이룬다.
같은 시기 유행가가 대체로 그랬다. 고향을 떠나 만주와 일본으로 흩어지던 사람들의 사정이 노랫말에 그대로 들어와 있다.
오케레코드 콩쿠르에서 시작한 길
1940년 오케레코드가 연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가수가 됐다. 당시에는 음반사가 직접 대회를 열어 신인을 뽑는 방식이 흔했다.
- 1916년 6월 19일 — 전남 무안 출생
- 1940년 — 오케레코드 콩쿠르 입상
- 1941년 — 「아주까리 등불」 발표
- 1940~50년대 — 음반 활동
- 1994년 2월 21일 — 사망 (향년 77세)
오케레코드는 이난영과 남인수를 배출한 회사다. 그 문을 통해 들어왔다는 사실만으로도 당시 그의 출발이 어떤 자리였는지 짐작할 수 있다.
음반에 남은 노래들
「십년이 하룻밤」과 「유정고향」, 「호남의 사나이」가 자료에 오른 곡들이다. 고향과 이별을 다룬 노래가 많다.
다만 이 시기 가수의 목록은 정리가 완전하지 않다. 음반사가 사라지고 원반이 흩어지면서 어떤 곡을 누가 불렀는지 어긋나는 경우가 있다.
그래서 확실한 것부터 세는 편이 낫다. 그가 부른 노래 가운데 지금까지 이름과 함께 또렷하게 남은 곡은 「아주까리 등불」이다.
이 시기 가수를 정리하기 어려운 이유는 또 있다. 한 사람이 여러 예명을 쓰거나, 같은 이름을 다른 가수가 이어받는 일이 드물지 않았기 때문이다.
해방과 전쟁을 거치며 자료가 흩어진 것도 크다. 음반사 장부와 가사지가 남지 않은 곡이 많아, 남은 유성기 원반 자체가 유일한 근거가 되는 경우가 흔하다.
자주 묻는 질문
최병호는 언제 사망했나요?
최병호는 1994년 2월 2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최병호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7세였고, 1916년 6월 19일 전남 무안에서 태어났습니다.
최병호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최병호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50년대 이후 공개 활동이 거의 없어 소식이 지면에 오르는 일이 드물었기 때문입니다.
대표곡은 무엇인가요?
1941년에 발표한 「아주까리 등불」입니다. 전기가 닿지 않던 시골집의 희미한 불빛을 두고 떠나온 고향을 그리는 정서를 담은 노래입니다.
어떻게 가수가 됐나요?
1940년 오케레코드가 연 콩쿠르에서 입상하며 데뷔했습니다. 당시에는 음반사가 직접 대회를 열어 신인을 뽑는 방식이 흔했습니다.
다른 노래는 무엇이 있나요?
「십년이 하룻밤」과 「유정고향」, 「호남의 사나이」가 자료에 올라 있습니다. 다만 이 시기 음반은 원반이 흩어져 곡과 가수의 대응이 어긋나는 경우가 있습니다.
참고한 자료
- 매일신문, 「[이동순의 가요 이야기] ‘아주까리 등불’의 가수 최병호」
- 위키백과, 「최병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