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영선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여인상 그린 서양화가
서양화가 박영선(朴泳善)이 1994년 6월 15일 세상을 떠났다. 박영선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4세였고, 사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여인상을 즐겨 그린 한국 근대미술의 개척자다.
- 사망일 — 1994년 6월 15일
- 사망 원인 —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음
- 향년 — 84세 (1910년 4월 10일생)
- 고향 — 평양
- 대표작 — 「아틀리에의 여인」, 「실내한정」, 여인 누드 연작

목차
박영선 프로필
| 이름 | 박영선 (朴泳善) |
|---|---|
| 출생 | 1910년 4월 10일, 평양 |
| 사망 | 1994년 6월 15일 (향년 84세) |
| 사인 | 공식 확인되지 않음 |
| 분야 | 서양화 (유화) |
| 등단 | 1931년 조선미술전람회 |
| 학력 | 일본 가와바타 미술학교 졸업 |
| 유학 | 1955년 프랑스 파리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 |
| 교직 | 서라벌예술대학 · 중앙대학교 교수 (1960~1976) |
스물한 살에 조선미술전람회로 이름을 알린 뒤 60년 넘게 붓을 들었다. 그림을 그리는 일과 가르치는 일을 나란히 한 세대다.
박영선 사망 원인
박영선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4년 6월 15일 여든넷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확인되고, 병명이나 경위를 밝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1976년 정년퇴임한 뒤로는 공개 활동이 크게 줄어 있었다. 화단의 원로가 조용히 작업을 이어 가던 시기다.
미술계 인물의 부고는 대체로 짧게 실린다. 그의 경우도 예외가 아니어서 세상을 떠날 무렵의 사정은 자세히 전해지지 않았다.
박영선 사망 이후
작품은 시장에서 계속 거래된다. 경매 기록이 남아 있고, 여인 누드 연작은 지금도 그의 이름을 대표하는 화면으로 꼽힌다.
국가 기관의 인물 자료에도 항목이 있다. 한국 근대미술의 개척자이자 근대적 미술교육의 선구자라는 설명이 붙어 있다.
제자들이 화단에 남았다.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에서 16년을 가르친 만큼 그의 영향은 작품보다 사람으로 더 넓게 퍼졌다.
서양인 같은 얼굴의 여인상
그의 화면을 설명할 때 가장 먼저 나오는 것이 여인이다. 농촌의 정경과 함께 여인상을 즐겨 그렸다.
특징은 얼굴이다. 갸름한 윤곽에 코가 오뚝한, 서양인에 가까운 인상으로 그렸다. 한국 여인을 그리면서도 서구 회화의 인체 감각을 그대로 들여온 결과다.
이 점이 그를 두고 갈리는 평가의 출발점이기도 하다. 서구 기법을 빠르게 익힌 성취로 보는 쪽과, 대상을 자기 눈으로 보지 않았다고 보는 쪽이 함께 있다.
마흔다섯에 떠난 파리 유학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갔다. 파리의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 공부했고, 이듬해 파리국제미술전에 작품을 냈다.
한국전쟁이 끝난 지 두 해밖에 안 된 때다. 화가가 유럽으로 유학을 가는 일 자체가 드물었고, 마흔다섯이라는 나이도 늦은 축이었다.
- 1910년 4월 10일 — 평양 출생
- 1931년 — 조선미술전람회로 등단
- 일본 유학 — 가와바타 미술학교 졸업
- 1955년 — 파리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 유학
- 1960~1976년 — 서라벌예술대학·중앙대학교 교수
- 1994년 6월 15일 — 사망 (향년 84세)
돌아온 뒤 화면이 달라졌다는 평이 따른다. 파리에서 본 것이 이후 작업의 방향을 바꿔 놓았다는 것이다.
교단에서 보낸 16년
1960년부터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가르쳤다. 1976년 정년으로 물러날 때까지 16년이다.
미술 교육이 제도로 자리 잡던 시기다. 무엇을 어떻게 가르칠지가 정해져 있지 않아, 교수 개인의 방식이 곧 학과의 방식이 되던 때였다.
그를 근대적 미술교육의 선구자로 부르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그린 그림만큼이나 가르친 자리가 이력에서 큰 몫을 차지한다.
자주 묻는 질문
박영선은 언제 사망했나요?
박영선은 1994년 6월 15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영선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4세였고, 1910년 4월 10일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박영선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박영선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1976년 정년퇴임한 뒤 공개 활동이 크게 줄어 세상을 떠날 무렵의 사정이 자세히 전해지지 않았습니다.
어떤 그림을 그렸나요?
농촌의 정경과 여인상을 즐겨 그렸습니다. 갸름한 윤곽에 코가 오뚝한, 서양인에 가까운 얼굴로 여인을 그린 것이 화면의 가장 뚜렷한 특징입니다.
파리에서 무엇을 공부했나요?
1955년 프랑스로 건너가 파리의 아카데미 그랑 쇼미에르에서 공부했습니다. 이듬해에는 파리국제미술전에 작품을 냈으며, 당시 마흔다섯이었습니다.
어디에서 학생을 가르쳤나요?
1960년부터 1976년 정년퇴임할 때까지 서라벌예술대학과 중앙대학교에서 가르쳤습니다. 미술 교육이 제도로 자리 잡던 시기의 16년입니다.
참고한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박영선」
- 김달진미술연구소, 「박영선 — 심미적 자세로 우수의 여체를 즐겨 그린 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