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상억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그리운 금강산」 시인
시인 한상억(韓相億)이 1992년 11월 8일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한상억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7세였고, 사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가곡 「그리운 금강산」의 노랫말을 쓴 사람이다.
- 사망일 — 1992년 11월 8일
- 사망 장소 —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
- 사망 원인 —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음
- 향년 — 77세 (1915년 9월 1일생)
- 대표작 —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사 (1961)

목차
한상억 프로필
| 이름 | 한상억 (韓相億) |
|---|---|
| 출생 | 1915년 9월 1일 |
| 사망 | 1992년 11월 8일, 미국 로스앤젤레스 (향년 77세) |
| 사인 | 공식 확인되지 않음 |
| 직업 | 시인 · 언론인 |
| 대표작 | 가곡 「그리운 금강산」 작사 (최영섭 작곡, 1961) |
| 언론 이력 | 「주간인천」 주필 · 「경기매일신문」 논설위원 |
| 단체 |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 · 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경기도 지부장 |
| 교직 | 인하대학교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
시인이면서 신문을 만들었고 문화 단체를 이끌었다. 이름보다 노랫말이 먼저 알려진 경우이지만 활동의 폭은 그보다 넓었다.
한상억 사망 원인
한상억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2년 11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일흔일곱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서 맞은 죽음이라 자세한 사정이 전해지지 않았다. 부고는 이틀 뒤 국내 신문에 짧게 실렸다.
기사 제목에도 「그리운 금강산 작사 시인」이라는 말이 먼저 붙었다. 세상을 떠나는 순간까지 그 곡이 그의 이름을 대신했다.
한상억 사망 이후
노래는 계속 불린다. 남북 관련 행사가 열릴 때마다 이 곡이 무대에 오르고, 그때마다 작사가의 이름이 함께 소개된다.
인천이 그를 챙겼다. 지역 언론이 「인천이 빚은 그리운 금강산」이라는 표현으로 이 곡의 내력을 정리한 글을 내놓기도 했다.
문화 자료에도 항목이 남아 있다. 한국 가곡을 정리하는 자리에서 이 곡은 빠지지 않고, 그 설명에 그의 이름이 붙어 있다.
「그리운 금강산」이 만들어진 자리
1961년에 나왔다. 그가 노랫말을 쓰고 최영섭이 곡을 붙였다. 두 사람 모두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던 문화계 인사였다.
광복 16주년을 기념하는 기획으로 만들어진 곡이다. 갈 수 없게 된 산을 그리는 마음을 담았고, 분단이 굳어지던 시기의 정서가 그대로 실렸다.
발표 직후부터 널리 불렸다. 성악가의 무대곡이면서 동시에 학교와 방송에서 반복해 들려주는 노래가 됐다는 점이 이 곡의 특이한 위치다.
노랫말이 한 번 바뀐 이유
처음 쓴 가사에는 북을 향한 날 선 표현이 들어 있었다. 냉전이 한창이던 때의 언어다.
1970년대 들어 남북 대화가 시작되면서 그 대목이 고쳐졌다. 지금 부르는 가사는 손질을 거친 쪽이다.
- 1915년 9월 1일 — 출생
- 1961년 — 「그리운 금강산」 작사
- 1970년대 — 남북 대화 이후 가사 일부 수정
- 이후 — 인하대 국어국문학과 초빙교수
- 1992년 11월 8일 — 미국에서 사망 (향년 77세)
노랫말이 시대에 따라 고쳐진 사례로 자주 언급된다. 곡을 만든 사람의 뜻과 그 곡을 부르는 사회의 사정이 나란히 남은 셈이다.
인천에서 쌓은 이력
주간인천 주필과 경기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냈다. 글을 쓰는 일과 신문을 만드는 일을 함께 했다.
문화 단체에서도 자리를 맡았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과 한국문화예술인총연합회 경기도 지부장을 지내며 지역 문화 행정에 관여했다.
말년에는 인하대에서 국어국문학을 가르쳤다. 시와 언론, 행정과 교단을 오간 이력이 한 사람 안에 겹쳐 있다.
자주 묻는 질문
한상억은 언제 사망했나요?
한상억은 1992년 11월 8일 미국 캘리포니아주 로스앤젤레스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한상억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7세였습니다.
한상억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한상억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국내가 아니라 미국에서 맞은 죽음이라 자세한 사정이 전해지지 않았고 부고도 짧게 실렸습니다.
「그리운 금강산」은 누가 만들었나요?
노랫말은 한상억이 쓰고 곡은 최영섭이 붙였습니다. 1961년 광복 16주년 기념 기획으로 만들어졌으며 두 사람 모두 인천을 무대로 활동하던 문화계 인사였습니다.
가사가 바뀐 적이 있나요?
있습니다. 처음 쓴 가사에는 북을 향한 날 선 표현이 있었으나 1970년대 남북 대화가 시작되면서 고쳐졌습니다. 지금 부르는 것은 손질을 거친 쪽입니다.
시인 말고 어떤 일을 했나요?
「주간인천」 주필과 「경기매일신문」 논설위원을 지낸 언론인이었습니다. 전국문화단체총연합회 중앙위원을 맡았고 말년에는 인하대에서 국어국문학을 가르쳤습니다.
참고한 자료
- 한국일보, 「「그리운 금강산」 작사 시인 한상억씨 별세」
- 경인일보, 「[참성단] 인천이 빚은 ‘그리운 금강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