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금희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키다리 미스터 김」 가수
가수 이금희가 2007년 2월 20일 세상을 떠났다. 이금희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66세였고, 사인은 뇌출혈 뒤 이어진 합병증이다. 1966년 「키다리 미스터 김」을 부른 가수다.
- 사망일 — 2007년 2월 20일
- 사망 원인 — 뇌출혈 뒤 합병증
- 향년 — 66세 (1940년 9월 15일생)
- 본명 — 이대금
- 대표곡 — 「키다리 미스터 김」(1966)

목차
이금희 프로필
| 이름 | 이금희 |
|---|---|
| 본명 | 이대금 |
| 출생 | 1940년 9월 15일 · 경남 창원 |
| 사망 | 2007년 2월 20일 (향년 66세) |
| 사인 | 뇌출혈 뒤 합병증 |
| 직업 | 가수 |
| 데뷔 | 1959년 미8군 무대 |
| 대표곡 | 「키다리 미스터 김」(1966) |
같은 이름의 방송인과 다른 사람이다. 아나운서 이금희와 혼동되는 경우가 많아 직업을 함께 적는 편이 확실하다.
이금희 사망 원인
이금희 사망 원인은 뇌출혈 뒤에 온 합병증이다. 2007년 2월 20일 새벽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쓰러진 것은 2005년이다. 뇌출혈로 입원한 뒤 합병증이 겹치면서 중환자실 치료가 이어졌다.
마지막에는 폐렴이 왔다. 호흡이 어려워진 상태에서 회복하지 못했다.
투병이 이 년 가까이 이어졌다. 쓰러진 뒤로는 무대에 서지 못했고 공개 활동도 없었다.
당시 보도에 향년 68세로 적힌 경우가 있다. 1940년 9월 15일생을 기준으로 하면 만 66세이고, 이 글은 만 나이를 따랐다.
이금희 사망 이후
노래 한 곡이 이름을 대신한다. 「키다리 미스터 김」을 모르는 사람은 드물어도 가수 이름을 아는 사람은 그보다 적다.
1960년대 가요를 이야기할 때 인용된다. 트로트 일색이던 시기에 리듬이 다른 곡을 낸 사례로 다뤄진다.
음원은 지금도 재생된다. 옛 가요를 모은 음반과 방송을 통해 계속 소개되고 있다.
영상 자료는 많지 않다. 1960년대 방송이 대부분 보존되지 않아, 무대에 선 모습을 확인하기는 어렵다.
미8군 무대에서 시작했다
1959년에 첫 무대에 섰다. 미8군 클럽이었다.
당시 가수들이 거쳐 가던 통로다. 주한 미군 부대의 무대가 실력을 검증받는 자리였고, 여기서 이름을 알린 뒤 방송으로 나가는 순서가 일반적이었다.
외국 노래를 많이 다뤘다. 미군을 대상으로 한 무대라 팝과 재즈를 소화해야 했고, 그 경험이 뒷날 곡 선택에 남았다.
본격적인 활동은 1960년대다. 무대에서 방송과 음반으로 자리를 옮겼다.
이 통로를 거친 이름이 여럿이다. 1950년대 후반부터 1960년대까지 한국 대중음악의 인력 상당수가 이 무대에서 나왔다.
음악의 폭이 그만큼 넓어졌다. 바깥에서 들어온 리듬이 국내 가요에 섞이는 통로 노릇을 했고, 그 흔적이 이 시기 곡들에 남아 있다.
「키다리 미스터 김」
1966년에 발표했다. 이 한 곡으로 이름이 알려졌다.
경쾌한 리듬이 특징이다. 국내 최초의 댄스 가요로 불리는 경우가 있을 만큼, 당시 가요와 박자가 달랐다.
- 1940년 9월 15일 — 경남 창원 출생
- 1959년 — 미8군 무대에서 첫 공연
- 1960년대 — 방송과 음반으로 활동
- 1966년 — 「키다리 미스터 김」 발표
- 2005년 — 뇌출혈로 입원
- 2007년 2월 20일 — 사망 (향년 66세)
키 큰 남자를 노래한 가사다. 제목이 그대로 유행어처럼 쓰이면서 노래보다 문구가 먼저 알려진 면도 있다.
이후 여러 가수가 다시 불렀다. 원곡자보다 리메이크로 접한 세대가 더 많아진 경우다.
발표 시점이 1966년이라는 점이 중요하다. 그 무렵 가요의 주류는 느린 박자였고, 이런 리듬이 음반으로 나온 사례가 많지 않았다.
최초의 팬클럽
국내 첫 팬클럽을 가진 가수로 기록된다. 조직된 팬 모임이 드물던 시기였다.
지금과 같은 형태는 아니었다. 편지와 모임으로 이어지는 수준이었지만, 가수를 중심으로 사람이 모였다는 점에서 출발점으로 꼽힌다.
인기의 크기를 보여 주는 기록이다. 음반 판매량 집계가 없던 때라, 이런 자료가 당시 반응을 가늠하는 단서가 된다.
활동 기간은 길지 않았다. 대표곡 이후 이어진 히트곡이 많지 않아, 경력 전체가 한 곡에 묶여 기억된다.
말년에는 무대와 멀어져 있었다. 방송 출연이 줄어든 뒤 쓰러졌고, 그대로 회복하지 못했다.
한 곡으로 남는 일이 드물지는 않다. 다만 그 곡이 육십 년 가까이 불린다면 이야기가 달라지고, 그 점에서 이름이 계속 호명된다.
자주 묻는 질문
이금희는 언제 사망했나요?
2007년 2월 20일 새벽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이금희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66세였고, 1940년 9월 15일 경남 창원에서 태어났습니다.
이금희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이금희 사망 원인은 뇌출혈 뒤에 온 합병증입니다. 2005년 뇌출혈로 쓰러진 뒤 중환자실 치료가 이어졌고 마지막에는 폐렴으로 호흡이 어려워졌습니다.
아나운서 이금희와 같은 사람인가요?
다른 사람입니다. 이 글은 1940년생 가수이며 본명은 이대금입니다. 같은 이름의 방송인과 자주 혼동되므로 직업을 함께 적어 구분합니다.
대표곡은 무엇인가요?
1966년 「키다리 미스터 김」입니다. 경쾌한 리듬으로 당시 가요와 박자가 달라 국내 최초의 댄스 가요로 불리기도 합니다.
향년이 68세로 적힌 자료도 있습니다.
1940년 9월 15일생을 기준으로 하면 만 66세입니다. 당시 보도에 다른 나이가 적힌 경우가 있는데, 이 글은 생년월일에 맞춰 만 나이를 적었습니다.
참고한 자료
- 영남일보, 「「키다리 미스터 김」 가수 이금희씨 별세」
- 위키백과, 「이금희 (가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