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무생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용의 눈물」 이성계 배우
배우 김무생이 2005년 4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김무생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65세였고, 사인은 폐렴이다. 「용의 눈물」의 이성계로 기억되는 연기자다.
- 사망일 — 2005년 4월 16일
- 사망 원인 — 폐렴
- 향년 — 65세 (1940년 3월 16일생)
- 데뷔 —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
- 대표작 — 「용의 눈물」 이성계 역

목차
김무생 프로필
| 이름 | 김무생 (金茂生) |
|---|---|
| 출생 | 1940년 3월 16일 · 충남 서산 |
| 사망 | 2005년 4월 16일 (향년 65세) |
| 사인 | 폐렴 |
| 직업 | 배우 · 성우 · 연극 배우 |
| 학력 | 동국대학교 연극영화과 |
| 데뷔 | 1960년 연극 ·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 |
| 대표작 | 「용의 눈물」 · 「조선왕조 오백년」 · 「제1공화국」 |
활동 기간이 사십 년을 넘는다. 무대와 라디오, 텔레비전을 차례로 거쳤다.
김무생 사망 원인
김무생 사망 원인은 폐렴이다. 2005년 4월 16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폐에 이상이 생긴 것은 이 년쯤 전이다. 치료를 받아 오던 중 세상을 떠나기 한 달 전에 폐렴이 겹쳤다.
마지막 한 달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다. 폐렴이 진행되면서 회복하지 못했다.
사인을 폐암으로 적은 자료도 있다. 당시 보도 대부분은 폐질환 악화에 따른 폐렴으로 전했고, 이 글은 그 표현을 따랐다.
김무생 사망 이후
사극의 왕 역할이 이름과 붙어 남았다. 조선을 세운 인물을 연기한 배우로 가장 먼저 인용된다.
아들인 배우 김주혁은 2017년 세상을 떠났다. 아버지와 아들이 모두 연기자였고, 지금은 두 사람 모두 고인이다.
매년 기일에 기사가 나온다. 세상을 떠난 지 이십 년이 지난 뒤에도 4월이면 이름이 다시 오르내린다.
영상 자료는 충분히 남았다. 1990년대 이후 드라마가 대부분 보존돼 있어, 그의 연기를 확인하기는 어렵지 않다.
성우로 시작했다
1960년에 연극으로 시작했다. 동국대 연극영화과를 다니며 무대에 섰다.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로 들어갔다. 이듬해에는 동양방송 성우 공채 1기에도 이름을 올렸다.
라디오가 주요 매체이던 시기다. 목소리만으로 인물을 만들어야 하는 훈련이 뒷날 연기의 바탕이 됐다.
텔레비전으로 옮긴 것은 1969년이다. MBC 특채로 화면에 나오기 시작했고, 이때부터 배우로 불렸다.
성우 공채 1기라는 이력이 두 방송사에 걸쳐 있다. 라디오 드라마가 편성의 중심이던 때라, 새로 문을 연 방송사마다 목소리 연기자를 따로 뽑았다.
성우에서 배우로 넘어간 사례가 이 세대에 여럿이다. 텔레비전이 자리를 잡으면서 라디오에 있던 인력이 화면 쪽으로 옮겨 갔다.
왕을 연기한 배우
이성계를 두 번 맡았다. 「조선왕조 오백년」과 「용의 눈물」이다.
1996년 시작한 「용의 눈물」이 대표작으로 꼽힌다. 조선 건국과 왕자의 난을 다룬 장편 사극이고, 그 중심에 이 배역이 있었다.
- 1940년 3월 16일 — 충남 서산 출생
- 1960년 — 연극배우로 활동 시작
- 1963년 — 동아방송 성우 1기
- 1969년 — MBC 특채로 텔레비전 데뷔
- 1996년 — 「용의 눈물」 이성계 역
- 2005년 4월 16일 — 사망 (향년 65세)
같은 인물을 다른 작품에서 다시 맡는 일은 흔치 않다. 배역이 한 배우의 얼굴로 굳었다는 뜻이기도 하다.
「추사 김정희」에서는 김정희를 연기했다. 왕이 아닌 실존 인물을 맡은 사극도 여러 편 남아 있다.
사극 밖의 얼굴
현대극에도 꾸준히 나왔다. 「제1공화국」에서는 조병옥을 맡았다.
「청춘의 덫」과 「인생은 아름다워」에도 출연했다. 가족극에서 아버지 자리를 맡는 배역이 많았다.
「대추나무 사랑걸렸네」처럼 긴 드라마에도 이름을 올렸다. 오래 방영되는 작품에 자주 들어간 편이다.
목소리가 배역의 무게를 만들었다는 평이 있다. 성우로 다진 발성이 권위 있는 인물을 맡는 데 그대로 쓰였다는 이야기다.
연기 폭이 사극 쪽으로 기운 것은 사실이다. 다만 현대극 출연 편수도 적지 않아, 사극 배우라는 분류만으로는 경력이 다 설명되지 않는다.
중심에 서기보다 중심을 만드는 자리에 있었다. 주인공의 아버지나 윗사람처럼 극의 축을 잡아 주는 배역이 반복됐다.
1990년대 후반이 활동의 정점이다. 오십 대 후반에 맡은 배역들이 대표작으로 남았고, 그 시기 사극의 얼굴 가운데 하나로 꼽힌다.
자주 묻는 질문
김무생은 언제 사망했나요?
2005년 4월 16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무생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65세였고, 1940년 3월 16일 충남 서산에서 태어났습니다.
김무생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무생 사망 원인은 폐렴입니다. 이 년쯤 전부터 폐에 이상이 있어 치료를 받던 중 폐렴이 겹쳤고, 마지막 한 달은 의식이 없는 상태였습니다.
향년이 63세로 적힌 자료도 있습니다.
생년을 1943년으로 적은 자료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1940년 3월 16일생을 기준으로 만 나이를 적었고, 다른 생년을 쓴 기록과는 두 살 차이가 납니다.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1996년 「용의 눈물」의 이성계 역입니다. 앞서 「조선왕조 오백년」에서도 같은 인물을 맡았고, 「제1공화국」의 조병옥 역도 함께 꼽힙니다.
성우 출신인가요?
맞습니다. 1963년 동아방송 성우 1기로 들어갔고 이듬해 동양방송 성우 공채 1기에도 이름을 올렸습니다. 텔레비전으로 옮긴 것은 1969년입니다.
참고한 자료
- MBC 뉴스데스크, 「원로배우 김무생씨 폐질환 악화 별세」
- 위키백과, 「김무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