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동휘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액션영화 500편 원로배우

배우 장동휘가 2005년 4월 2일 세상을 떠났다. 장동휘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3세였고, 사인은 고관절 골절 수술 뒤 이어진 합병증이다. 500편 가까운 영화에 출연한 액션 배우의 1세대다.

  • 사망일 — 2005년 4월 2일
  • 사망 원인 — 고관절 골절 수술 뒤 합병증
  • 향년 — 83세 (1921년 6월 22일생)
  • 본명 — 장갑순
  • 출연 — 영화 약 500편
장동휘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21년 출생, 2005년 향년 83세로 별세한 액션영화 원로 배우

장동휘 프로필

이름장동휘 (張東輝)
본명장갑순 (張甲淳)
출생1921년 6월 22일 · 인천
사망2005년 4월 2일 (향년 83세)
사인고관절 골절 수술 뒤 합병증
직업영화 배우 · 연극 배우 · 영화제작자
데뷔1939년 악극단 · 1957년 영화 「아리랑」
수상대종상 남우주연상(1971) · 옥관문화훈장(1995)

활동 기간이 오십 년을 넘는다. 무대에서 시작해 영화 제작까지 갔다.

장동휘 사망 원인

장동휘 사망 원인은 고관절이 부러진 뒤 이어진 합병증이다. 2005년 4월 2일 밤 청주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사고는 사 년 전에 있었다. 넘어져 고관절이 부러졌고, 수술을 받은 뒤에도 후유증이 이어졌다.

합병증의 내용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다. 한 신문은 뇌졸중으로 전했고, 다른 신문은 수술 뒤 합병증을 동반한 노환으로 적었다.

고관절 골절은 고령에서 회복이 어려운 부상이다. 누워 지내는 기간이 길어지면서 다른 질환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부러진 시점과 사망 사이가 몇 해씩 벌어지기도 한다.

향년도 자료에 따라 갈린다. 생년을 1919년이나 1920년으로 적은 기사가 있어 향년이 85세나 86세로 나오기도 하는데, 이 글은 1921년 6월 22일생을 기준으로 만 나이를 적었다.

장동휘 사망 이후

장례는 영화인장으로 치러졌다. 개인의 장례가 아니라 영화계가 함께 치르는 형식이었다.

액션 배우라는 분류가 이 이름과 함께 굳었다. 1960~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이야기할 때 첫 줄에 놓이는 배우다.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대표작으로 남았다. 1963년 작품이고, 전쟁영화의 표본처럼 인용되는 영화다.

필모그래피의 끝이 1994년이다. 「만무방」에 출연한 뒤로는 새 작품이 없었고, 이후 십 년은 활동을 접은 상태였다.

악극단에서 영화로

본명은 장갑순이다. 1921년 인천에서 태어났다.

1939년 악극단에 들어갔다. 콜럼비아 악극단 소속으로 무대에 서는 것이 출발점이었다.

연극에서 이름을 먼저 알렸다. 1955년 무대에 올린 「협객 임꺽정」에서 임꺽정을 맡은 것이 그중 하나다.

영화 데뷔는 1957년이다. 「아리랑」에 주연으로 나오면서 화면으로 옮겨 왔고, 이때 이미 서른을 훌쩍 넘긴 나이였다.

오백 편의 출연작

출연작이 오백 편에 이른다. 1957년부터 1994년까지의 기록이다.

맡은 역이 한쪽으로 모인다. 군인이나 형사, 조직의 우두머리처럼 힘과 권위를 쥔 인물이 대부분이었다.

  1. 1921년 6월 22일 — 인천 출생
  2. 1939년 — 콜럼비아 악극단 입단
  3. 1957년 — 영화 「아리랑」으로 데뷔
  4. 1963년 — 「돌아오지 않는 해병」 · 청룡영화상 특별상
  5. 1971년 — 대종상 남우주연상
  6. 1994년 — 「만무방」 출연
  7. 2005년 4월 2일 — 사망 (향년 83세)

대역을 쓰지 않던 시기다. 액션 장면의 안전 장치가 지금 같지 않아, 배우가 몸으로 감당하는 부분이 컸다.

수상은 1971년 대종상 남우주연상이다. 액션 배우로 굳은 이미지와 달리, 연기 자체로 평가받은 기록이 함께 남아 있다.

배우이자 제작자

1966년 「맹호작전」으로 제작에 나섰다. 주연을 맡으면서 제작까지 겸한 작품이다.

이듬해 「영호작전」도 같은 방식이었다. 출연과 제작을 함께 하는 형태가 한동안 이어졌다.

배우가 제작을 겸하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제작 편수가 많고 자본 규모는 작던 시기라, 이름값이 있는 배우가 기획에 참여하는 방식이 통했다.

1995년에 옥관문화훈장을 받았다. 활동을 마무리한 뒤 받은 것으로, 경력 전체에 대한 평가에 가깝다.

제작자로 남긴 편수는 많지 않다. 몇 편을 직접 만든 뒤로는 다시 연기 쪽에 무게를 두었고, 제작 이력은 경력의 한 구간으로 정리된다.

전쟁영화가 여러 편이다. 「맹호작전」과 「영호작전」처럼 군을 소재로 한 작품이 제작과 출연 양쪽에 걸쳐 있어, 그 시기 한국 영화의 한 흐름을 보여 준다.

자주 묻는 질문

장동휘는 언제 사망했나요?

2005년 4월 2일 밤 청주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동휘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3세였고, 1921년 6월 22일 인천에서 태어났습니다.

장동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장동휘 사망 원인은 고관절이 부러진 뒤 이어진 합병증입니다. 사 년 전 넘어져 수술을 받았고 이후 후유증이 계속됐습니다. 합병증의 내용은 자료마다 조금씩 다르게 전합니다.

향년이 85세나 86세로 적힌 자료도 있습니다.

생년이 자료마다 1919년에서 1921년 사이로 갈리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1921년 6월 22일생을 기준으로 만 나이를 적었고, 다른 생년을 쓴 기사와는 두세 살 차이가 납니다.

몇 편에 출연했나요?

약 500편입니다. 1957년 「아리랑」으로 데뷔해 1994년 「만무방」까지 출연했고, 군인이나 형사 같은 역할을 주로 맡았습니다.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1963년 「돌아오지 않는 해병」이 가장 먼저 꼽힙니다. 이 밖에 「검은 머리」와 「증언」이 있고, 1971년에는 대종상 남우주연상을 받았습니다.

참고한 자료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