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원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영원한 햄릿 연극배우

연극배우 김동원이 2006년 5월 13일 세상을 떠났다. 김동원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9세였고, 사인은 숙환이다. 한국에서 처음 햄릿을 연기해 「영원한 햄릿」으로 불린 배우다.

  • 사망일 — 2006년 5월 13일
  • 사망 원인 — 숙환
  • 향년 — 89세 (1916년 11월 14일생)
  • 데뷔 — 1932년 연극 「고래」
  • 출연 — 연극 300여 편
김동원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16년 출생, 2006년 향년 89세로 별세한 영원한 햄릿 연극배우

김동원 프로필

이름김동원 (金東園)
출생1916년 11월 14일 · 개성
사망2006년 5월 13일 (향년 89세)
사인숙환
직업연극 배우 · 영화 배우
데뷔1932년 연극 「고래」
대표 배역1951년 「햄릿」 햄릿 역
경력대한민국예술원 연극·영화·무용분과 회장(1994~99)

활동 기간이 예순 해를 넘는다. 일제강점기에 무대에 올라 1994년까지 섰다.

김동원 사망 원인

김동원 사망 원인은 숙환이다. 2006년 5월 13일 여든아홉에 세상을 떠났다.

투병이 이 년 가까이 이어졌다. 2004년 6월 뇌질환으로 쓰러진 뒤 회복하지 못했다.

무대를 떠난 지는 오래였다. 1994년 출연을 끝으로 공연에 서지 않았고, 이후 십 년은 공개 활동이 거의 없었다.

같은 세대의 연극인이 대부분 앞서 세상을 떠난 뒤였다. 1930년대에 무대를 시작한 사람 가운데 2000년대까지 생존한 경우는 드물다.

김동원 사망 이후

「영원한 햄릿」이라는 별명이 남았다. 한 배역이 배우의 이름을 대신하는 드문 경우다.

한국 연극사의 증인으로 인용된다. 신극이 자리를 잡던 시기부터 1990년대까지를 한 사람의 경력으로 지나왔기 때문이다.

기록이 영상으로 남기 어려운 분야다. 연극은 공연이 끝나면 사라지기 때문에, 300편의 대부분은 사진과 대본으로만 전한다.

이름이 겹치는 인물이 여럿이다. 다큐멘터리 감독과 배우 가운데 같은 이름이 있어, 찾을 때 연극배우라는 설명이 함께 붙는다.

열여섯에 무대에 올랐다

1916년 개성에서 태어났다. 1932년에 연극 「고래」로 무대에 섰다.

그때 나이가 열여섯이다. 정식 교육 과정이 없던 시절이라 무대에 올라가면서 배우는 방식이었다.

번역극이 주류이던 때다. 서양 희곡을 옮겨 올리는 공연이 많아, 초기부터 고전 작품을 다루는 경험이 쌓였다.

해방과 전쟁을 무대에서 지났다. 극단이 흩어지고 다시 모이기를 반복하는 동안에도 연기를 놓지 않았다.

연극이 대중오락의 한 축이던 시기다. 영화 제작 편수가 적고 텔레비전은 없던 때라, 도시의 극장이 관객을 직접 만나는 자리였다.

배우를 직업으로 삼기는 어려웠다. 공연 수입이 일정하지 않아 무대를 오래 지키는 사람 자체가 많지 않았다.

한국 최초의 햄릿

1951년에 햄릿을 맡았다. 한국에서 처음 올린 「햄릿」이다.

전쟁 중이었다. 극장 사정도 관객 사정도 좋을 수 없던 시기에 셰익스피어 비극을 올린 셈이다.

  1. 1916년 11월 14일 — 개성 출생
  2. 1932년 — 연극 「고래」로 데뷔
  3. 1951년 — 한국 초연 「햄릿」 주연
  4. 1956년 — 영화 「여성의 적」 출연
  5. 1994년 — 국립극단 「이성계의 부동산」
  6. 2006년 5월 13일 — 사망 (향년 89세)

이 배역이 평생 따라붙었다. 이후 다른 작품을 아무리 해도 소개 문구의 첫 줄은 햄릿이었다.

「욕망이라는 이름의 전차」와 「파우스트」에도 올랐다. 번역극의 대표 작품들을 차례로 거쳤다.

셰익스피어 공연이 자리를 잡는 출발점이기도 하다. 이후 한국 무대에서 반복해 올린 작품들의 첫 사례가 이때 만들어졌다.

연극 300편

무대에 오른 작품이 300편에 이른다. 1932년부터 1994년까지의 기록이다.

마지막 작품은 국립극단의 「이성계의 부동산」이다. 그때 나이가 일흔여덟이었다.

영화에도 나왔다. 「여성의 적」과 「별아 내 가슴에」, 「춘향전」 같은 작품에 이름이 남아 있다.

중심은 끝까지 무대였다. 화면 출연이 있었지만 경력의 대부분은 연극이 차지한다.

영화 쪽 기록은 상대적으로 얇다. 1950~1960년대에 몇 편을 남긴 뒤로는 스크린 출연이 이어지지 않았다.

1994년부터 1999년까지 대한민국예술원의 분과 회장을 맡았다. 연기에서 물러난 뒤에는 연극계의 제도 쪽 일을 했다.

후배 배우를 기르는 일에도 관여했다. 무대 경험을 물려주는 방식이 곧 교육이던 시기라, 선배의 존재가 그대로 학교 노릇을 했다.

한 사람의 경력이 한국 연극의 연표와 겹친다. 신극이 들어오던 무렵에 시작해 국립극단이 자리를 잡은 뒤까지 이어졌기 때문이다.

자주 묻는 질문

김동원은 언제 사망했나요?

2006년 5월 1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동원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9세였고, 1916년 11월 14일 개성에서 태어났습니다.

김동원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동원 사망 원인은 숙환입니다. 2004년 6월 뇌질환으로 쓰러진 뒤 이 년 가까이 투병하다 세상을 떠났습니다.

왜 「영원한 햄릿」으로 불리나요?

1951년 한국에서 처음 올린 「햄릿」에서 주인공을 맡았기 때문입니다. 이후 어떤 작품에 나와도 소개의 첫 줄은 이 배역이었습니다.

몇 편에 출연했나요?

연극 300여 편입니다. 1932년 「고래」로 데뷔해 1994년 국립극단의 「이성계의 부동산」까지 무대에 섰습니다.

같은 이름의 다른 인물과 어떻게 구분하나요?

1916년생 연극배우로 찾으면 됩니다. 다큐멘터리 감독과 젊은 배우 가운데 같은 이름이 있어 생년이나 직업을 함께 넣는 편이 확실합니다.

참고한 자료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