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영남 사망 원인 나이 잃어버린 태양 영화감독

영화감독 고영남이 2003년 9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고영남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64년 「잃어버린 태양」으로 데뷔해 사십 년 가까이 연출했다. 만 68세였다.

  • 사망일 — 2003년 9월 17일
  • 사인 — 공식 결론 없음
  • 나이 — 만 68세 (1935년 2월 22일생)
  • 본명 — 진석모
  • 감독 데뷔 — 1964년 「잃어버린 태양」

고영남 프로필

활동명고영남
본명진석모
출생1935년 2월 22일 (충청북도 중원 수안보)
사망2003년 9월 17일 (만 68세)
직업영화감독
입문1959년 「육체의 길」 조연출
감독 데뷔1964년 「잃어버린 태양」
주요 수상1989년 황금촬영상 감독상 · 1996년 예총 예술문화공로상

사십 년 넘게 현장에 있었다. 1959년에 입문해 2000년 작품까지 이름이 이어졌다.

고영남 사망 원인

고영남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당시 기록은 별세 사실과 날짜만 전한다.

서울에서 숨졌다. 2003년 9월 17일이고, 당시 보도도 날짜와 나이만 전했다.

만 68세였다. 1935년 2월 22일에 태어나 예순여덟 해를 살았다.

이 글은 사인을 추정하지 않는다. 확인된 기록이 없을 때는 비워 두는 것이 원칙이다.

마지막 작품으로부터 삼 년 뒤였다. 2000년 「그림일기」가 확인되는 마지막 연출작이다.

고영남 사망 이후

1960년대 데뷔 감독 세대가 거론됐다. 제작사 체제 아래에서 작품을 쏟아 내던 시기에 입문한 세대다.

장르를 가리지 않은 이력이 함께 짚였다. 멜로와 스릴러, 문예물을 번갈아 맡아 온 감독으로 분류된다.

이런 이력은 그 시대의 조건에서 나왔다. 감독이 작품을 고르는 구조가 아니라 회사가 기획한 작품에 배정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한 감독의 필모그래피가 장르별로 흩어지는 일이 흔했다. 작가주의로 묶기 어려운 세대라는 평가도 여기서 비롯된다.

필름은 남아 있다. 연출작 가운데 상당수가 보존돼 있어 회고전에서 상영된다.

다만 유실된 작품도 있다. 1960~70년대 영화는 보관 체계가 없어 제목만 기록에 남은 경우가 적지 않다.

이름은 2003년 부고 목록에 올랐다. 그해 세상을 떠난 문화예술인을 정리한 자료에서 확인된다.

조연출로 시작했다

1959년에 현장에 들어갔다. 「육체의 길」 조연출이 첫 일이다.

충청북도 중원 수안보 출생이다. 지금의 충주 지역이다.

본명은 진석모다. 고영남은 활동명이며, 영화 기록에는 활동명으로 올라 있다.

조연출은 다섯 해를 거쳤다. 1959년에 시작해 1964년에 감독으로 올라섰다.

당시 도제 구조가 그랬다. 조연출로 현장을 익힌 뒤 기회를 받아 입봉하는 순서였고, 그 기간이 짧지 않았다.

「잃어버린 태양」

1964년에 입봉했다. 「잃어버린 태양」이 첫 연출작이다.

스물아홉에 감독이 됐다. 1935년생이 1964년에 데뷔한 셈이다.

1968년 「심판」이 이어졌다. 데뷔 사 년 뒤의 작품으로, 1960년대 연출작 가운데 함께 꼽히는 편이다.

1960년대는 제작 편수가 가장 많던 시기다. 회사가 인력과 장비를 갖추고 여러 작품을 동시에 돌렸기 때문에, 젊은 감독이 자리를 얻기도 그만큼 수월했다.

대신 속도가 요구됐다. 한 해에 여러 편을 맡는 일이 흔했고, 그 조건에서 장르를 가리지 않는 이력이 만들어졌다.

사십 년을 연출했다

1980년대에도 작업이 이어졌다. 1982년 「사랑의 노예」가 그 시기 작품이다.

1988년과 1989년에도 연출했다. 「위험한 용기」와 「제2의 성」이며, 상을 받은 해와 겹친다.

1990년대에는 작업이 줄었다. 한국 영화 제작 편수 자체가 바닥을 치던 시기여서, 1960년대에 입봉한 감독들이 현장을 떠나는 일이 많았다.

  1. 1935년 2월 22일 — 충청북도 수안보 출생 (본명 진석모)
  2. 1959년 — 「육체의 길」 조연출로 입문
  3. 1964년 — 「잃어버린 태양」으로 감독 데뷔
  4. 1968년 — 「심판」
  5. 1989년 — 황금촬영상 감독상, 「제2의 성」
  6. 2000년 — 「그림일기」
  7. 2003년 9월 17일 — 사망 (만 68세)

1989년에 상을 받았다. 제13회 황금촬영상 감독상이다. 다만 자료에 따라 황금영화상 특별상으로 적힌 기록도 있어 표기가 갈린다.

1996년에는 공로상을 받았다. 한국예술문화단체총연합회가 영화 부문에 준 예술문화공로상이다.

2000년에 마지막 작품을 냈다. 「그림일기」로, 데뷔로부터 서른여섯 해 뒤의 연출이다.

예순여덟까지의 기록이다. 1960년대에 입봉해 2000년까지 카메라 뒤에 선 감독이며, 한국 영화의 호황과 침체를 모두 현장에서 겪었다.

자주 묻는 질문

고영남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고영남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록은 2003년 9월 17일 서울에서 만 68세로 별세한 사실과 날짜만 전하고 있습니다.

데뷔작은 무엇인가요?

1964년 「잃어버린 태양」입니다. 그 전에는 1959년 「육체의 길」 조연출로 현장에 입문해 다섯 해를 거친 뒤 감독으로 올라섰습니다.

본명이 무엇인가요?

본명은 진석모입니다. 고영남은 활동명이고 영화 자료에도 활동명으로 올라 있어, 필모그래피를 찾을 때는 활동명을 써야 합니다.

마지막 작품은 무엇인가요?

2000년 「그림일기」입니다. 고영남 사망 삼 년 전의 작품이며, 1964년 데뷔로부터 서른여섯 해 뒤의 연출입니다.

참고한 자료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