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설봉 사망 원인 나이 최고령 연극배우 기네스
연극배우 고설봉이 2001년 9월 16일 세상을 떠났다. 고설봉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3년 최다 출연과 최고령 연극배우로 한국기네스북에 오른 배우다. 향년 88세였다.
- 사망일 — 2001년 9월 16일
- 사인 — 공식 결론 없음
- 향년 — 88세 (1913년 4월 10일생)
- 본명 — 고진섭
- 데뷔 — 1937년 연극배우
목차
고설봉 프로필
| 활동명 | 고설봉 |
|---|---|
| 본명 | 고진섭 |
| 출생 | 1913년 4월 10일 (강원도 홍천) |
| 사망 | 2001년 9월 16일 (향년 88세) |
| 직업 | 연극배우 · 교육자 |
| 데뷔 | 1937년 연극 · 1948년 영화 「노다지 창고」 |
| 소속 | 청춘좌 · 아랑 · 신청년 · 민극 · 신협 · 국립극단 |
| 주요 기록 | 1990년 은관문화훈장 · 1993년 한국기네스북 |
육십 년 넘게 무대에 섰다. 1937년에 시작해 말년까지 연기를 놓지 않았다.
고설봉 사망 원인
고설봉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밝혀진 바가 없다. 당시 기록은 별세 사실과 날짜만 전한다.
서울에서 숨졌다. 2001년 9월 16일이다.
향년 88세였다. 1913년 4월 10일에 태어나 여든여덟 해를 살았다.
이 글은 사인을 추정하지 않는다. 확인된 기록이 없을 때는 비워 두는 것이 원칙이다.
고령까지 활동했다는 점은 분명하다. 1993년에 최고령 연극배우로 기록된 뒤로도 팔 년을 더 살았다.
고설봉 사망 이후
동양극장 세대의 마지막이 거론됐다. 1930년대 상업 연극의 현장을 직접 겪은 배우가 드물어졌다.
증언이 자료로 다뤄진다. 일제강점기 연극계를 기억하는 몇 안 되는 인물이어서 생전의 구술이 연구에 쓰인다.
제자들이 이름을 이어 불렀다. 강단에서 가르친 세대가 이후 연극계의 중심이 됐다.
무대 기록은 흩어져 있다. 연극은 영상으로 남기기 어려워 공연 사진과 대본, 평이 자료 구실을 한다.
그래서 연극배우의 이력은 확인이 까다롭다. 영화는 필름이 남고 드라마는 테이프가 남지만, 무대는 공연이 끝나면 사라진다. 프로그램북과 신문 공연 평이 사실상 유일한 증거가 되는 경우가 많다.
이름은 2001년 부고 목록에 올랐다. 그해 세상을 떠난 예술인을 정리한 자료에서 확인된다.
예명은 임선규가 지었다
본명은 고진섭이다. 설봉은 예명이다.
작가가 붙여 준 이름이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쓴 극작가 임선규가 지어 주었다.
눈 설에 봉우리 봉을 쓴다. 눈 덮인 산봉우리를 뜻하는 이름이다.
강원도 홍천 출생이다. 1913년에 태어났고 일제강점기에 연극을 시작했다.
영화에도 나왔다. 1948년 「노다지 창고」가 스크린 데뷔작이다.
동양극장에서 국립극단까지
청춘좌에서 출발했다. 1940년 전후 동양극장 소속 극단이다.
동양극장은 당시의 중심이었다. 전속 극단과 전속 작가를 두고 상업 연극을 돌린 곳이고, 그 체제를 겪은 배우가 이후 한국 연극의 기반이 됐다.
극단을 여럿 거쳤다. 아랑과 신청년, 민극, 신협을 지나 국립극단에 들어갔다.
1977년에 정년 퇴임했다. 8월 21일 국립극단에서 동반 퇴임했다.
퇴임이 끝이 아니었다. 이후에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꾸준히 나왔고, 예순을 넘긴 나이에 새 매체로 옮겨 간 셈이다.
기네스북에 올랐다
1993년에 기록으로 인정받았다. 한국기네스북에 최다 작품 출연과 최고령 연극배우로 올랐다.
두 기록이 한 사람에게 모였다. 오래 했고 많이 했다는 뜻이 함께 담긴 셈이다.
연극에서 편수는 특별한 의미를 갖는다. 영화나 드라마와 달리 한 작품을 수십 회에서 수백 회 공연하기 때문에, 출연 작품 수가 많다는 것은 무대에 오른 횟수가 그만큼 쌓였다는 뜻이다. 체력이 곧 기록이 되는 직업이다.
- 1913년 4월 10일 — 강원도 홍천 출생 (본명 고진섭)
- 1937년 — 연극배우로 데뷔
- 1940년 전후 — 동양극장 청춘좌 활동
- 1948년 — 영화 「노다지 창고」
- 1977년 8월 21일 — 국립극단 정년 퇴임
- 1990년 — 은관문화훈장
- 1993년 — 한국기네스북 최다 출연 · 최고령 연극배우
- 2001년 9월 16일 — 사망 (향년 88세)
협회 일도 맡았다. 한국연극협회 이사장을 지내며 후진 양성에 힘썼다.
강단에도 섰다. 서울연극학교 강사와 서라벌예술초급대학 전임교수, 중앙대학교 전임강사를 거쳤다.
1990년에 훈장을 받았다. 은관문화훈장으로, 문화예술 분야의 공로에 주어지는 등급이다.
여든여덟까지의 기록이다. 1930년대 상업 연극에서 시작해 국립극단과 텔레비전을 거친 이력이며, 한국 연극의 거의 전 구간을 한 사람이 통과했다.
자주 묻는 질문
고설봉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고설봉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당시 기록은 2001년 9월 16일 서울에서 향년 88세로 별세한 사실과 날짜만 전하고 있습니다.
기네스북에 어떤 기록으로 올랐나요?
1993년 한국기네스북에 최다 작품 출연과 최고령 연극배우로 선정됐습니다. 두 기록이 한 사람에게 함께 인정된 경우입니다.
본명과 예명이 어떻게 되나요?
본명은 고진섭이고 설봉은 예명입니다. 「사랑에 속고 돈에 울고」를 쓴 극작가 임선규가 지어 준 이름으로, 눈 덮인 산봉우리를 뜻합니다.
언제까지 활동했나요?
1977년 국립극단에서 정년 퇴임한 뒤에도 텔레비전 드라마에 꾸준히 출연했습니다. 고설봉 사망 전까지 육십 년 넘게 연기를 이어 간 셈입니다.
참고한 자료
- 위키백과, 「고설봉」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동양극장과 청춘좌 관련 항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