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세정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연락선은 떠난다」 가수

가수 장세정이 2003년 2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다. 장세정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2세였고, 사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37년 데뷔곡 「연락선은 떠난다」로 이름을 얻은 가수다.

  • 사망일 — 2003년 2월 (자료에 따라 16일·17일)
  • 사망 장소 — 미국
  • 사망 원인 —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음
  • 향년 — 82세 (1921년생)
  • 대표곡 — 「연락선은 떠난다」 · 「고향초」
장세정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21년 출생, 2003년 향년 82세로 별세한 「연락선은 떠난다」 가수

장세정 프로필

이름장세정 (張世貞)
출생1921년, 평양
사망2003년 2월, 미국 (향년 82세)
사인공식 확인되지 않음
직업가수 · 트로트 가수
데뷔1937년 「연락선은 떠난다」
대표곡「연락선은 떠난다」 · 「고향초」 · 「울어라 은방울」
사망일 표기2월 16일과 17일로 갈린다. 미국에서 별세한 탓으로 보인다

열여섯에 데뷔했다. 그 나이에 낸 첫 곡이 곧바로 히트해 이름을 알렸다.

장세정 사망 원인

장세정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2003년 2월 미국에서 여든둘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확인된다.

국내가 아니라 해외에서 일어난 일이다. 말년을 미국에서 보냈고 그곳에서 생을 마쳤다.

날짜도 자료마다 다르다. 2월 16일로 적은 곳과 17일로 적은 곳이 있는데, 해외에서 별세해 생긴 차이로 보인다.

국내 언론이 다룬 분량이 적었다. 부고를 가장 자세히 전한 곳이 한인 매체였을 만큼 국내 보도는 짧았다.

장세정 사망 이후

노래가 이름보다 널리 남았다. 「연락선은 떠난다」는 가수를 몰라도 제목은 아는 곡이 됐다.

가요사 정리에서 꾸준히 언급된다. 일제강점기 여자 가수를 이야기할 때 이난영과 나란히 놓이는 자리다.

경제사·사회사 자료에도 인용된다. 연락선이 오가던 시대를 설명하는 글에서 이 노래가 배경음악처럼 불려 나온다.

후배 가수들이 다시 불렀다. 「고향초」와 「연락선은 떠난다」 모두 여러 차례 리메이크됐다.

남은 자료는 얇다. 활동 중심 시기가 1930~1950년대이고 말년을 해외에서 보내, 국내에 축적된 기록이 많지 않다.

「연락선은 떠난다」

1937년에 나온 데뷔곡이다. 이 한 곡으로 곧바로 정상급 가수가 됐다.

연락선은 부산과 일본을 잇던 배다. 그 배를 타고 떠나는 사람과 남는 사람을 노랫말에 담았다.

시대가 노래에 겹친다. 일자리를 찾아 바다를 건너던 사람이 많던 때라, 개인의 이별담이면서 그 시기의 기록으로도 읽힌다.

지금도 인용이 잦다. 근대사를 다루는 글이나 방송에서 이 제목이 그대로 소제목으로 쓰이는 일이 많다.

「고향초」

광복 뒤에 낸 곡이다. 부고 기사 제목에 이 곡을 올린 매체가 있을 만큼 그를 대신하는 또 하나의 노래다.

고향을 그리는 내용이다. 평양에서 태어나 남쪽에서 활동하다 미국에서 생을 마친 이력과 겹쳐 읽히는 대목이 있다.

  1. 1921년 — 평양 출생
  2. 1937년 — 「연락선은 떠난다」로 데뷔
  3. 1930~1940년대 — 최고 인기 여자 가수로 활동
  4. 광복 이후 — 「고향초」 등 발표
  5. 2003년 2월 — 미국에서 사망 (향년 82세)

두 곡의 성격이 다르다. 데뷔곡이 떠나는 장면이라면 이쪽은 돌아가지 못하는 마음이라, 활동 전후기를 가르는 곡으로도 쓰인다.

이난영과 쌍벽

같은 시기에 정상에 있었다.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과 함께 최고 인기 여자 가수로 꼽혔다.

두 사람을 묶어 부르는 관행이 있다. 일제강점기 여자 가수를 이야기할 때 이름이 거의 항상 나란히 나온다.

목소리의 결은 달랐다. 한쪽이 애절하게 떨어뜨리는 창법이라면 이쪽은 또렷하게 끌고 가는 쪽이었다는 평이 남아 있다.

남은 이름값은 갈렸다. 이난영 쪽이 자료와 후속 세대를 더 남긴 반면, 이쪽은 노래만 남고 이름은 흐려진 편이다.

말년을 해외에서 보낸 것이 컸다. 국내에 머문 가수는 방송과 행사로 이름이 계속 불리지만, 떠난 뒤에는 그 통로가 끊긴다.

평양 출신이라는 점도 겹친다. 분단 이후 고향 자료에 접근할 수 없게 되면서 초기 이력을 확인할 길이 막혔다.

그래서 남은 것이 음원뿐이다. 지금 그를 아는 통로는 대부분 복각된 노래 몇 곡이고, 그 밖의 기록은 찾기 어렵다.

열여섯의 목소리가 그대로 남았다. 지금 들을 수 있는 녹음 대부분이 그 무렵의 것이라, 노년의 소리는 확인할 방법이 없다.

자주 묻는 질문

장세정은 언제 사망했나요?

2003년 2월 미국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장세정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2세였고, 1921년 평양에서 태어났습니다.

장세정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장세정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말년을 미국에서 보내다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고, 국내 언론이 다룬 분량이 적어 경위를 확인할 기록이 남지 않았습니다.

사망일이 16일과 17일로 다르게 나오는 이유는 무엇인가요?

자료마다 표기가 갈리기 때문입니다. 해외에서 세상을 떠난 탓에 생긴 차이로 보이며, 이 글은 두 표기가 함께 쓰인다는 사실을 그대로 적었습니다.

데뷔곡은 무엇인가요?

1937년에 발표한 「연락선은 떠난다」입니다. 열여섯에 낸 첫 곡이 곧바로 히트해 정상급 가수가 됐고, 지금도 근대사를 다루는 글에서 제목이 그대로 인용됩니다.

이난영과는 어떤 관계인가요?

같은 시기에 정상을 다툰 가수입니다. 「목포의 눈물」의 이난영과 함께 일제강점기 최고 인기 여자 가수로 꼽혔고, 지금도 두 사람의 이름이 거의 항상 나란히 나옵니다.

참고한 자료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