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카나리아 사망 원인 나이 본명 활동 74년

가수 신카나리아가 2006년 11월 24일 세상을 떠났다. 신카나리아 사망 원인은 노환이었다. 1928년에 데뷔해 2002년까지 무대에 섰다. 만 94세였다.

  • 사망일 — 2006년 11월 24일
  • 사인 — 노환 (중풍 뒤 3년 7개월 투병)
  • 나이 — 만 94세 (1912년 10월 26일생)
  • 본명 — 신경녀
  • 데뷔 — 1928년 · 활동 74년

신카나리아 프로필

활동명신카나리아
본명신경녀
출생1912년 10월 26일
사망2006년 11월 24일 (만 94세)
직업가수 · 악극 배우
데뷔1928년 「뻐꾹새」 「연락선」
대표곡「강남달」 「나는 열일곱살이예요」 「애수의 부르스」 「노들강변」
마지막 출연2002년 9월 추석특집 「가요무대」

칠십사 년을 노래했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2000년대까지 무대에 오른 유일한 세대다.

신카나리아 사망 원인

사인은 노환이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뒤 삼 년 칠 개월을 투병했다.

2006년 11월 24일에 숨졌다. 생일로부터 한 달쯤 지난 시점이다.

만 94세였다. 1912년 10월 26일에 태어나 아흔네 해를 살았다.

직전까지 무대가 있었다. 2002년 9월 추석특집 「가요무대」가 마지막 출연이고, 그로부터 몇 달 뒤 중풍이 왔다.

중풍은 뒤가 길다. 고령에서는 회복이 더디고, 거동이 멈추면 다른 기능도 함께 떨어지는 경우가 많다.

신카나리아 사망 이후

1세대 가수의 계보가 거론됐다. 1920년대에 음반을 낸 가수 가운데 마지막까지 생존한 한 사람이었다.

초기 음반 보존이 과제로 남았다. 1920~30년대 유성기 음반은 원반이 유실된 경우가 많아 복각 작업이 따로 필요하다.

음원은 일부 남아 있다. 복각된 초기 녹음과 후기 방송 출연 영상이 함께 전한다.

증언이 자료가 됐다. 악극단 시절을 직접 기억하는 거의 유일한 인물이어서 생전의 인터뷰가 연구에 쓰인다.

이름은 2006년 부고 목록에 올랐다. 그해 세상을 떠난 가수 가운데 최고령으로 기록된다.

본명은 신경녀다

활동명과 본명이 다르다. 본명은 신경녀이고 무대에서는 신카나리아를 썼다.

카나리아는 새 이름이다. 맑고 높은 목소리를 가리키는 비유로 붙은 예명이다.

1928년에 데뷔했다. 「뻐꾹새」와 「연락선」을 취입한 것이 시작이다.

열여섯에 음반을 냈다. 당시에는 십 대에 데뷔하는 가수가 적지 않았다.

대표곡이 여럿이다. 「강남달」과 「강남제비」, 「나는 열일곱살이예요」, 「애수의 부르스」, 「노들강변」이 꾸준히 불렸다.

초기 가요는 녹음 조건이 달랐다. 마이크 성능이 낮고 한 번에 통째로 받아야 했기 때문에, 음정을 흔들지 않고 끝까지 밀어붙이는 발성이 요구됐다. 그 조건에서 선택받은 목소리가 예명이 됐다.

악극단의 시대

1938년 이후 악극단에 집중했다. 공연이 활동의 중심이 됐다.

악극은 노래와 연기를 함께 요구한다. 음반만 내는 가수와 달리 무대에서 극을 끌고 가야 하므로 체력과 연기력이 함께 필요했다.

1950년대에는 KPK악극단에서 활동했다. 김해송이 이끈 단체다.

  1. 1912년 10월 26일 — 출생 (본명 신경녀)
  2. 1928년 — 「뻐꾹새」 「연락선」으로 데뷔
  3. 1938년 이후 — 악극단 공연에 집중
  4. 1950년대 — KPK악극단 활동
  5. 1960년대 — 대한가수협회 부회장
  6. 1978년 — 미국 시카고 이민, 1983년 귀국
  7. 2002년 9월 — 마지막 방송 출연
  8. 2006년 11월 24일 — 사망 (만 94세)

전쟁이 활동 환경을 바꿨다. 극장이 파괴되고 단체가 흩어지면서 악극단 자체가 줄었고, 1960년대 이후에는 라디오와 텔레비전이 무대를 대신했다.

협회 일도 맡았다. 1960년대에 대한가수협회 부회장을 지냈다.

선배 가수의 역할이 그랬다. 무대가 줄어든 세대가 후배의 처우와 저작권 문제를 대신 말하는 자리로 옮겨 가는 흐름이 있었다.

다방과 이민, 그리고 귀국

1970년대에는 다방을 운영했다. 서울 충무로의 「카나리아 다방」이다.

예명을 간판에 썼다. 노래로 알려진 이름이 그대로 가게 이름이 된 것이고, 음악인들이 모이는 자리가 됐다.

1978년에 이민을 갔다. 미국 시카고로 떠났고, 예순여섯의 나이였다.

오 년 뒤 돌아왔다. 1983년에 귀국해 다시 국내 활동을 이어 갔다.

이후에는 원로 가수로 불렸다. 「가요무대」 같은 프로그램에 초청돼 초기 가요를 직접 부르는 자리가 주어졌다.

이런 출연은 기록의 성격을 띤다. 1920~30년대 노래를 당시에 부른 사람이 그대로 부르는 장면이어서, 복각 음반으로는 남지 않는 창법과 호흡이 영상에 함께 담겼다.

아흔넷까지의 기록이다. 1928년부터 2002년까지 칠십사 년이라는 활동 기간은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다시 나오기 어려운 숫자다.

자주 묻는 질문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신카나리아 사망 원인은 노환입니다. 중풍으로 거동이 불편해진 뒤 삼 년 칠 개월을 투병했고, 2006년 11월 24일 만 94세로 세상을 떠났습니다.

본명이 무엇인가요?

본명은 신경녀입니다. 무대에서는 맑고 높은 목소리를 가리키는 비유로 붙은 신카나리아라는 예명을 썼고, 1970년대에는 이 이름으로 다방도 운영했습니다.

활동 기간은 얼마나 되나요?

칠십사 년입니다. 1928년 「뻐꾹새」와 「연락선」으로 데뷔해 2002년 9월 추석특집 「가요무대」까지 무대에 섰습니다.

미국에 살았던 적이 있나요?

있습니다. 1978년 미국 시카고로 이민을 갔고 1983년에 귀국해 다시 국내에서 활동했습니다. 신카나리아 사망까지 이후 이십삼 년을 한국에서 보냈습니다.

참고한 자료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