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목인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목포의 눈물」 작곡가
작곡가 손목인이 1999년 1월 9일 일본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다. 손목인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5세였고, 지병인 심장질환이 원인이었다. 「목포의 눈물」과 「타향살이」를 지은 한국 대중가요 1세대다.
- 사망일 — 1999년 1월 9일
- 사망 장소 — 일본 도쿄
- 사망 원인 — 지병인 심장질환
- 향년 — 85세 (1913년생)
- 대표작 — 「목포의 눈물」(1935), 「타향살이」

목차
손목인 프로필
| 이름 | 손목인 |
|---|---|
| 출생 | 1913년, 경상남도 진주 |
| 사망 | 1999년 1월 9일, 일본 도쿄 (향년 85세) |
| 사인 | 지병인 심장질환 |
| 직업 | 작곡가 · 지휘자 · 아코디언 연주자 · 재즈 가수 |
| 대표작 | 「목포의 눈물」(1935), 「타향살이」 |
| 작업량 | 대중가요 1천여 곡, 뮤지컬 50여 곡, 영화음악 70여 편 |
| 활동 기간 | 1930년대 ~ 1990년대 |
1930년대에 시작해 1990년대까지 이어진 이력이다. 한국 대중음악이 유성기 시대에서 지금의 모습으로 오는 과정을 처음부터 끝까지 지켜본 몇 안 되는 사람이다.
손목인 사망 원인
손목인 사망 원인은 지병인 심장질환이었다. 1999년 자신이 지은 곡의 저작권 문제를 협의하러 일본 도쿄를 찾았다가 1월 9일 그곳에서 세상을 떠났다.
여든다섯이었다. 여행 중의 갑작스러운 부고여서 국내 방송 뉴스에도 전해졌다.
마지막 걸음이 저작권 일이었다는 점이 그의 이력과 겹친다. 일제강점기에 만든 곡들의 권리 관계가 오래 정리되지 않은 채 남아 있었기 때문이다.
손목인 사망 이후
고향 진주가 그의 이름을 기록으로 남겼다. 지역 문화 자료에 인물 항목이 올라 있고, 대중가요사를 다룰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 됐다.
노래는 계속 불린다. 「목포의 눈물」은 목포를 상징하는 곡으로 자리 잡아 지역 행사와 방송에서 거듭 연주된다.
평론 쪽에서도 재평가가 이어졌다. 트로트라는 장르가 어떻게 만들어졌는지 따질 때 그의 초기 작업이 출발점으로 놓인다.
「목포의 눈물」이라는 노래
1935년에 나왔다. 문일석이 노랫말을 쓰고 그가 곡을 붙였으며 이난영이 불렀다.
발표 당시부터 크게 퍼졌다. 식민지 시기의 서러움을 항구 도시의 풍경에 얹은 노래로 읽혔고, 그 정서가 노래를 오래 살아남게 했다.
지금은 목포라는 도시 자체를 대표하는 곡이 됐다. 유달산에 노래비가 서 있고, 야구장에서도 응원가로 불린다.
「타향살이」와 유랑의 정서
고향을 떠난 사람의 마음을 담은 노래다. 1930년대에 만주와 일본으로 흩어져 살던 조선인들 사이에서 널리 불렸다.
- 「목포의 눈물」 (1935) — 문일석 작사, 이난영 노래
- 「타향살이」 — 유랑의 정서를 담은 대표곡
- 대중가요 1천여 곡
- 뮤지컬 50여 곡
- 영화음악 70여 편
- 한국과 일본 양쪽에서 발표한 작품이 함께 남아 있다
두 곡 모두 떠나온 자리를 노래한다. 그 시기 사람들이 실제로 겪던 이동과 이별이 노래의 소재였고, 그래서 유행가를 넘어 시대의 기록이 됐다.
천여 곡을 남긴 작업량
남긴 곡이 1천여 편에 이른다. 뮤지컬 50여 곡과 영화음악 70여 편이 여기에 더해진다.
작곡만 한 것이 아니다. 지휘를 하고 아코디언을 연주했으며 재즈를 부르기도 했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하던 초기 대중음악판의 사정이 그대로 이력이 됐다.
- 1913년 — 경남 진주 출생
- 1930년대 — 작곡가로 활동 시작
- 1935년 — 「목포의 눈물」 발표
- 이후 — 「타향살이」 등 대중가요 1천여 곡
- 1999년 1월 9일 — 도쿄에서 사망 (향년 85세)
자주 묻는 질문
손목인은 언제 사망했나요?
손목인은 1999년 1월 9일 일본 도쿄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목인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5세였고, 1913년 경남 진주에서 태어났습니다.
손목인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손목인 사망 원인은 지병인 심장질환입니다. 자신이 지은 곡의 저작권 문제를 협의하러 도쿄를 찾았다가 그곳에서 갑자기 세상을 떠났습니다.
「목포의 눈물」은 누가 만들었나요?
1935년에 발표된 곡으로 문일석이 노랫말을 쓰고 손목인이 작곡했으며 이난영이 불렀습니다. 지금은 목포를 상징하는 노래로 유달산에 노래비가 서 있습니다.
손목인은 몇 곡을 남겼나요?
한국과 일본에서 발표한 대중가요가 1천여 곡에 이릅니다. 여기에 뮤지컬 50여 곡과 영화음악 70여 편이 더해집니다.
작곡 말고 어떤 활동을 했나요?
지휘자로 무대에 섰고 아코디언을 연주했으며 재즈 가수로도 활동했습니다. 한 사람이 여러 역할을 감당해야 하던 초기 대중음악판의 사정이 이력에 그대로 남았습니다.
참고한 자료
- MBC 뉴스데스크, 「「목포의 눈물」 작곡가 손목인 일본 여행중 사망」
- 디지털진주문화대전, 「손목인」
- 뉴스메이커, 「[박성서 평론] 「타향살이」, 「목포의 눈물」의 작곡가 손목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