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동훈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실험극장 연극배우
연극인 김동훈(金東勳)이 1996년 3월 21일 서울에서 세상을 떠났다. 김동훈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57세였고, 지병에 따른 것이었다. 극단 실험극장을 창립하고 「에쿠우스」를 올린 배우 겸 연출가다.
- 사망일 — 1996년 3월 21일 오전 7시
- 사망 장소 — 서울 삼성의료원
- 사망 원인 — 지병
- 향년 — 57세 (1939년 3월 9일생)
- 대표 이력 — 실험극장 창립단원 · 대표,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목차
김동훈 프로필
| 이름 | 김동훈 (金東勳) |
|---|---|
| 출생 | 1939년 3월 9일, 서울 |
| 사망 | 1996년 3월 21일, 서울 (향년 57세) |
| 사인 | 지병 (뇌졸중에 따른 심장마비로 적은 기록도 있다) |
| 직업 | 배우 · 연출가 |
| 출연작 | 「아들을 위하여」, 「심판」,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뚝이」, 「햄릿」 |
| 연출작 | 「휘가로의 결혼」, 「오셀로」, 「화니」, 「에쿠우스」 |
| 수상 | 동아연극상, 대한민국문화예술상 |
| 공직 | 한국연극협회 이사장, 예총 부회장 |
스물한 살에 극단을 만들고 쉰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무대에 서는 일과 무대를 만드는 일, 극단을 꾸리는 일을 동시에 한 사람이다.
김동훈 사망 원인
김동훈 사망 원인은 지병이었다. 1996년 3월 21일 오전 7시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쉰일곱 살이었다.
자료에 따라 표기가 조금 다르다. 뇌졸중에 따른 심장마비로 적은 기록이 있고, 부고 기사는 지병이라고만 밝혔다.
장례미사는 이틀 뒤 서울 청담동성당에서 봉헌됐고, 유해는 경기도 용인의 천주교 공원묘지에 안장됐다.
김동훈 사망 이후
그가 떠난 뒤 극단은 흔들렸다. 윤호진이 대표를 이어받았으나 재정난을 넘지 못해 그해 6월 신사동 전용 소극장이 문을 닫았다.
한 사람의 부재가 극단 하나의 존폐로 이어진 셈이다. 소극장 운영이 개인의 헌신에 얼마나 기대고 있었는지를 보여 주는 대목이다.
그럼에도 그가 만든 흐름은 남았다. 대학로에 소극장이 늘어나고 장기 공연이 자리 잡은 뒤에도 그 출발점으로 실험극장이 거론된다.
「에쿠우스」와 소극장 시대
1976년 운니동 소극장에서 올린 작품이다. 이 공연이 한국 연극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는다.
당시 연극은 며칠 공연하고 내리는 것이 보통이었다. 이 작품은 한 극장에서 오래 이어 가는 방식을 택했고, 관객이 줄을 서는 연극이 가능하다는 것을 보여 줬다.
소재도 파격이었다. 말을 눈멀게 한 소년과 그를 진찰하는 정신과 의사의 이야기로, 무대 위 표현 수위를 두고 논쟁이 이어졌다.
실험극장이라는 이름
1960년에 창립단원으로 참여했다. 스물한 살 때다. 1960년대 후반부터는 대표를 맡아 극단을 이끌었다.
- 1939년 3월 9일 — 서울 출생
- 1960년 — 극단 실험극장 창립단원
- 1962년 — 드라마센터 개관작 「햄릿」 등에 출연
- 1960년대 후반 — 실험극장 대표
- 1976년 — 운니동 소극장에서 「에쿠우스」 연출
- 1996년 3월 21일 — 서울에서 사망 (향년 57세)
극단 이름 그대로 실험을 앞세운 무대였다. 번역극을 적극적으로 들여오면서도 배우 훈련과 소극장 운영이라는 기본을 함께 다졌다.
배우로서의 「햄릿」
연출가로 더 알려졌지만 출발은 배우였다. 1962년 드라마센터 개관 무렵 「햄릿」과 「포기와 베스」에서 주요 배역을 맡았다.
「햄릿」 연기는 세상을 떠난 뒤에도 부고에 함께 실릴 만큼 오래 회자됐다. 「아들을 위하여」와 「심판」,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뚝이」도 대표 출연작으로 꼽힌다.
연출로 자리를 옮긴 뒤에도 배우의 눈을 놓지 않았다는 평이 따랐다. 「휘가로의 결혼」과 「오셀로」, 「화니」가 그 시기의 연출작이다.
자주 묻는 질문
김동훈은 언제 사망했나요?
김동훈은 1996년 3월 21일 오전 7시 서울 삼성의료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동훈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57세였습니다.
김동훈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동훈 사망 원인은 지병입니다. 다만 자료에 따라 표기가 달라 뇌졸중에 따른 심장마비로 적은 기록도 있고, 부고 기사는 지병이라고만 밝혔습니다.
「에쿠우스」는 어떤 공연이었나요?
1976년 운니동 소극장에서 그가 연출해 올린 작품입니다. 며칠 공연하고 내리던 관행을 깨고 장기 공연을 시도해 한국 연극에 큰 변화를 가져왔다는 평가를 받습니다.
실험극장과 어떤 관계인가요?
1960년 창립단원으로 참여했고 1960년대 후반부터 대표를 맡았습니다. 그가 세상을 떠난 1996년, 극단은 재정난으로 신사동 전용 소극장을 닫았습니다.
김동훈의 대표작은 무엇인가요?
연출작으로는 「에쿠우스」와 「휘가로의 결혼」, 「오셀로」, 「화니」가 있습니다. 배우로는 「햄릿」과 「아들을 위하여」, 「심판」, 「롤러스케이트를 타는 오뚝이」가 꼽힙니다.
참고한 자료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김동훈」
- 가톨릭평화신문, 「[위령기도를] 배우 김동훈씨 선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실험극장(實驗劇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