길옥윤 사망 원인과 프로필 | 향년 68세, 가요를 바꾼 작곡가
작곡가 길옥윤(본명 최치정)이 1995년 3월 17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길옥윤 사망 당시 나이는 68세, 사인은 폐암이었다. 암이 척추까지 번진 상태로 투병하던 중이었다.
- 사망일 — 1995년 3월 17일
- 사망 장소 — 서울 강동구 병원
- 사망 원인 — 폐암 (척추 전이)
- 향년 — 68세 (1927년 2월 27일생)
- 당시 활동 — 투병 중, 사후 문화훈장 보관장 추서

목차
길옥윤 프로필
| 이름 | 길옥윤 (본명 최치정) |
|---|---|
| 출생 | 1927년 2월 27일, 평안북도 영변 |
| 사망 | 1995년 3월 17일, 서울 (향년 68세) |
| 사인 | 폐암 |
| 직업 | 작곡가 · 작사가 · 색소폰 연주가 |
| 학력 |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전문부 (1950년 졸업) |
| 일본 활동명 | 요시야 준 (吉屋潤) |
| 활동 기간 | 1950년대 ~ 1990년대 |
| 대표곡 | 「서울의 찬가」, 「이별」, 「당신은 모르실거야」, 「사랑은 영원히」 |
치과의사 면허를 가진 채 음악으로 방향을 튼 이력이 먼저 눈에 띈다. 일본에서 재즈 연주가로 자리를 잡은 뒤 귀국해, 1960~70년대 한국 대중가요의 히트곡을 대량으로 써낸 인물이다.
길옥윤 사망 원인
길옥윤 사망 원인은 폐암이다. 발견 당시 암이 척추까지 번진 상태였다. 폐암은 초기 증상이 기침 정도로 가벼워 진행된 뒤에 발견되는 경우가 많은 병이다.
투병은 서울 강동구의 한 병원에서 이어졌고, 1995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나흘 뒤인 3월 21일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예협회장으로 영결식이 열렸다.
길옥윤 사망 소식과 마지막 나날
길옥윤 사망 소식은 1995년 3월 17일 방송과 이튿날 신문을 통해 전해졌다. 영결식 운구 때 패티김이 「서울의 찬가」를 불렀고, 이 장면이 여러 매체에 실리며 오래 회자됐다.
말년까지 그는 무대를 놓지 않았다. 병이 깊어지기 전까지 방송과 공연에 나섰고, 후배 음악인들과의 작업도 이어졌다. 세상을 떠난 뒤 정부는 문화훈장 보관장을 추서했다.
나이 표기가 자료마다 갈리는 것은 기준 차이다. 1927년 2월생이고 1995년 3월에 사망했으므로 생일이 지난 뒤여서 만 68세이며, 세는나이로 적은 자료에서는 69세로 나온다.
길옥윤은 어떤 작곡가였나
가장 먼저 붙는 말은 세련됨이다. 재즈와 스탠더드 팝의 화성을 한국 대중가요에 끌어들여, 트로트 일색이던 흐름 바깥에 다른 길을 냈다는 평가를 받는다.
작업 방식도 특징이 있었다. 작사와 작곡을 함께 하고 편곡까지 관여해, 한 곡을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손으로 완성하는 경우가 많았다. 연주자 출신이라 관악 편성을 다루는 감각이 뚜렷했다는 점도 자주 언급된다.
놓인 자리로 보면 한국 대중음악이 방송과 함께 커지던 시기의 중심이다. 그가 쓴 곡을 부른 가수들이 곧 그 시대의 간판이었고, 노래 목록만 훑어도 1960~70년대 가요의 지형이 그려진다.
길옥윤 약력 — 데뷔부터 마지막까지
영변에서 서울로 — 데뷔 이전
1927년 평안북도 영변에서 태어났다. 1950년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전문부를 졸업해 의료인의 길이 열려 있었으나 음악을 택했다. 학창 시절부터 색소폰을 잡고 악단 활동을 했다.
일본에서의 요시야 준 — 1950~1960년대 중반
일본으로 건너가 요시야 준(吉屋潤)이라는 이름으로 활동했다. 재즈 색소폰 연주자로 자리를 잡았고 작·편곡가로도 일했다. 이 시기에 익힌 재즈 어법이 뒤에 그의 가요를 다른 곡들과 구분 짓게 된다.
귀국과 전성기 — 1960년대 후반~1970년대
귀국한 뒤 히트곡을 쏟아냈다. 1966년 「서울의 찬가」를 발표했고, 「이별」, 「당신은 모르실거야」, 「사랑은 영원히」가 이어졌다. 패티김·혜은이를 비롯한 당대 가수들이 그의 곡을 불렀다.
말년 — 1980~1995년
1981년에는 경희대학교 대학원에서 치의학 석사 학위를 받기도 했다. 방송과 공연을 이어가다 폐암 진단을 받았고, 1995년 3월 17일 세상을 떠났다. 그해 10월 세종로공원에 노래비가 세워졌다.
- 1927년 2월 — 평안북도 영변 출생
- 1950년 — 서울대학교 치과대학 전문부 졸업
- 1950~60년대 — 일본에서 요시야 준으로 활동
- 1966년 — 「서울의 찬가」 발표, 패티김과 결혼
- 1973년 — 패티김과 이혼
- 1995년 3월 17일 — 폐암으로 사망 (향년 68세)
- 1995년 10월 — 세종로공원에 노래비 건립
길옥윤과 패티김
1966년 가수 패티김과 결혼했고 7년 뒤인 1973년 헤어졌다. 이혼 이후에도 작곡가와 가수로서의 작업은 이어졌고, 그가 쓴 곡 상당수를 패티김이 불렀다.
영결식에서 패티김이 「서울의 찬가」를 부른 것도 이 관계의 연장선에 있다. 두 사람의 이야기는 한국 대중음악사에서 작곡가와 가수의 협업 사례로 자주 인용된다.
「서울의 찬가」와 남긴 노래들
「서울의 찬가」는 1966년에 나왔다. 도시의 이름을 정면에 내건 밝은 행진곡풍의 노래로, 발표 이후 서울을 대표하는 곡으로 자리 잡아 각종 행사에서 반복해 불렸다.
그가 남긴 곡은 수백 편에 이르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길옥윤 사망 30년이 지난 지금도 「이별」과 「당신은 모르실거야」는 리메이크와 방송을 통해 계속 불리고 있다.
자주 묻는 질문
길옥윤은 언제 사망했나요?
1995년 3월 17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나흘 뒤 대학로 마로니에공원에서 연예협회장으로 영결식이 열렸습니다.
길옥윤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사망 원인은 폐암입니다. 발견 당시 암이 척추까지 번진 상태로 투병했습니다.
길옥윤은 몇 살에 사망했나요?
1927년 2월 27일에 태어나 1995년 3월 17일 사망했으므로 만 68세입니다. 일부 자료에 69세로 적힌 것은 세는나이 기준입니다.
길옥윤의 대표곡은 무엇인가요?
「서울의 찬가」(1966), 「이별」, 「당신은 모르실거야」, 「사랑은 영원히」가 대표곡으로 꼽힙니다. 작사와 작곡을 함께 한 경우가 많습니다.
참고한 자료
- MBC 뉴스데스크, 「작곡가 길옥윤 68세로 별세」, 1995-03-17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길옥윤」, 한국학중앙연구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