손전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60년 영화 인생 배우
배우 손전(孫傳)이 1999년 9월 8일 세상을 떠났다. 손전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9세였고, 사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60년 동안 영화에 나오다 단역으로 마지막을 맞은 배우 겸 감독이다.
- 사망일 — 1999년 9월 8일
- 사망 원인 —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음
- 향년 — 89세 (1910년 1월 27일생)
- 출연 — 자료에 따라 1천 5백여 편으로 적는다
- 연출 — 「쌍무지개 뜨는 언덕」(1965) 등

목차
손전 프로필
| 이름 | 손전 (孫傳) |
|---|---|
| 출생 | 1910년 1월 27일 |
| 사망 | 1999년 9월 8일 (향년 89세) |
| 사인 | 공식 확인되지 않음 |
| 직업 | 배우 · 영화감독 · 제작자 |
| 출연작 | 「내가 넘은 38선」(1951), 「공포의 밤」(1952), 「여자의 열쇠」(1963) |
| 연출작 | 「쌍무지개 뜨는 언덕」(1965) |
| 활동 기간 | 약 60년 |
| 출연 편수 | 자료에 따라 1천 5백여 편 |
주연으로 이름을 남긴 배우가 아니다. 대신 60년이라는 기간과 편수가 그의 이력을 대신 설명한다.
손전 사망 원인
손전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다. 1999년 9월 8일 여든아홉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확인되고, 병명이나 경위를 밝힌 기록은 남아 있지 않다.
아흔에 가까운 나이였다. 마지막까지 단역으로 카메라 앞에 섰다는 이야기가 그의 이력을 정리한 자료에 남아 있다.
부고가 크게 다뤄지지는 않았다. 조연과 단역으로 채운 이력은 세상을 떠날 때도 짧은 기사 한 줄로 정리되는 편이다.
손전 사망 이후
한국영상자료원이 그의 이력을 별도 항목으로 정리했다. 영화인들의 증언을 모으는 구술 작업에서 그의 이름이 한 자리를 차지한다.
제목이 그대로 그를 요약한다. 「단역으로 마감한 60년 영화 인생」이라는 표현이 지금 그를 부르는 말이 됐다.
필름도 일부 남았다. 1950~60년대 작품이 보관돼 있어 그 시기 화면에서 그의 얼굴을 찾아볼 수 있다.
단역으로 마감한 60년
60년을 영화에 있었다. 그 사이 배우와 감독, 제작자를 모두 거쳤다.
눈여겨볼 것은 순서다. 연출과 제작을 거친 뒤에도 다시 배우로 돌아와 단역을 맡았다. 자리를 올라갔다가 내려온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끝까지 현장에 있었다는 뜻이다.
출연 편수는 자료에 따라 1천 5백여 편으로 적는다. 한 해에 스무 편이 넘는 셈이니, 짧게 나오는 배역을 계속 맡았다는 계산이 나온다.
전쟁 한복판에서 찍은 영화
1951년 「내가 넘은 38선」에 나왔다. 한국전쟁이 한창이던 때다.
이듬해에는 「공포의 밤」에 출연했다. 필름도 장비도 없고 촬영소마저 무너진 시기에 만들어진 작품들이다.
- 1910년 1월 27일 — 출생
- 1951년 — 「내가 넘은 38선」 출연
- 1952년 — 「공포의 밤」 출연
- 1963년 — 「여자의 열쇠」 출연
- 1965년 — 「쌍무지개 뜨는 언덕」 연출
- 1999년 9월 8일 — 사망 (향년 89세)
이 시기 영화를 만든 사람들의 이력은 그 자체로 기록이 된다. 남은 필름이 적어, 누가 어느 현장에 있었는지가 곧 그 시절을 증언하는 자료가 되기 때문이다.
감독으로 만든 작품들
1965년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연출했다. 배우로 오래 일한 뒤 카메라 뒤로 넘어간 경우다.
제작에도 손을 댔다. 1960년대 한국 영화는 소규모 제작사가 난립하던 구조라 배우가 직접 회사를 차리는 일이 드물지 않았다.
다만 그의 이름이 남은 쪽은 결국 연기다. 연출작보다 출연작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의 이력을 정리할 때도 언제나 배우 쪽부터 적는다.
자주 묻는 질문
손전은 언제 사망했나요?
손전은 1999년 9월 8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손전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89세였고, 1910년 1월 27일에 태어났습니다.
손전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손전 사망 원인은 공식적으로 알려지지 않았습니다. 여든아홉에 세상을 떠났다는 사실만 확인되며 병명이나 경위를 밝힌 기록은 남아 있지 않습니다.
몇 편의 영화에 나왔나요?
자료에 따라 1천 5백여 편으로 적습니다. 60년으로 나누면 한 해에 스무 편이 넘는 셈이라, 짧게 나오는 배역을 계속 맡았다는 계산이 나옵니다.
감독도 했나요?
했습니다. 1965년 「쌍무지개 뜨는 언덕」을 연출했고 제작에도 손을 댔습니다. 다만 연출작보다 출연작이 압도적으로 많아 그의 이력을 정리할 때는 언제나 배우 쪽부터 적습니다.
대표 출연작은 무엇인가요?
한국전쟁 중에 만들어진 「내가 넘은 38선」(1951)과 「공포의 밤」(1952), 그리고 「여자의 열쇠」(1963)가 자료에 남아 있는 대표 출연작입니다.
참고한 자료
- 한국영상자료원 KMDb, 「구술로 만나는 영화인 — 단역으로 마감한 60년 영화 인생, 감독 겸 배우 손전」
- 위키백과, 「손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