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금봉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1960년대 은막의 여왕

배우 도금봉이 2009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다. 도금봉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8세였고, 사인은 노환이다. 알리지 말라는 유언에 따라 부고가 며칠 뒤에야 전해졌다.

  • 사망일 — 2009년 6월 3일
  • 사망 원인 — 노환
  • 향년 — 78세 (1930년 8월 27일생)
  • 본명 — 정옥순
  • 데뷔 — 1957년 영화 「황진이」
도금봉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30년 출생, 2009년 향년 78세로 별세한 1960년대 대표 여배우

도금봉 프로필

이름도금봉
본명정옥순 (鄭玉順)
출생1930년 8월 27일
사망2009년 6월 3일 (향년 78세)
사인노환
직업영화 배우 · 연극 배우 · 텔레비전 배우
옛 예명지일화 (地一華)
출연영화 60여 편

1960~1970년대를 대표하는 여배우다. 주연 못지않은 조연이라는 평이 따라다녔다.

도금봉 사망 원인

도금봉 사망 원인은 노환이다. 2009년 6월 3일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다.

부고가 늦게 알려졌다. 세상에 알리지 말라는 유언이 있었기 때문이다.

닷새쯤 지나서야 전해졌다. 영화계가 뒤늦게 소식을 접하고 기사가 나왔다.

말년에는 공개 활동이 없었다. 화면에서 물러난 지 오래된 상태로 지냈다.

향년은 자료에 따라 갈린다. 76세나 79세로 적은 기사가 있는데, 이 글은 1930년 8월 27일생을 기준으로 만 나이를 적었다.

도금봉 사망 이후

은막의 여왕이라는 말이 부고에 붙었다. 1960년대 한국 영화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이름이다.

조용한 마무리로 기억된다. 부고를 알리지 말라는 유언 자체가 기사의 첫 줄에 놓였다.

필름은 일부만 남았다. 1950~1960년대 작품 가운데 보존되지 않은 것이 많아 출연작 전부를 확인하기는 어렵다.

복원된 작품은 다시 상영된다. 한국영상자료원이 복원한 옛 영화가 공개될 때마다 이름이 함께 나온다.

1960년대는 제작 편수가 가장 많던 때다. 한 해에 백 편이 넘게 나오던 시기라, 주요 배우의 출연 목록이 지금 기준으로는 놀랄 만큼 길다.

그만큼 유실도 많다. 제작은 활발했지만 필름 보관 체계가 없어, 목록에 있는 작품과 실제로 볼 수 있는 작품의 차이가 크다.

악극단의 지일화

본명은 정옥순이다. 1930년에 태어났다.

1950년부터 악극단에 있었다. 이때 쓰던 예명이 지일화다.

연극배우로 먼저 자리를 잡았다. 전쟁 직후 극단이 활동을 이어 가던 시기다.

악극은 노래와 연기를 함께 다뤘다. 무대에서 익힌 표현이 뒷날 영화 연기의 바탕이 됐다.

이 경로를 밟은 배우가 여럿이다. 1950년대 후반 한국 영화가 규모를 키우면서 무대에 있던 인력을 대거 끌어왔다.

연기를 배울 곳이 따로 없었다. 극단 생활 자체가 훈련 과정이었고, 무대 경력의 길이가 곧 실력의 척도로 통했다.

「황진이」로 바뀐 이름

1957년에 영화로 옮겼다. 「황진이」가 계기다.

이름도 이때 바뀌었다. 지일화 대신 도금봉이라는 이름으로 활동을 시작했다.

  1. 1930년 8월 27일 — 출생
  2. 1950년 — 악극단 입단, 예명 지일화
  3. 1957년 — 영화 「황진이」로 전향
  4. 1960~1970년대 — 영화 60여 편 출연
  5. 1980년대 이후 — 활동 축소
  6. 2009년 6월 3일 — 사망 (향년 78세)

스물일곱에 영화계에 들어갔다. 무대 경력이 칠 년 쌓인 상태에서의 전향이다.

이후 이십 년이 전성기다. 1960년대와 1970년대에 출연작이 몰려 있다.

전향이 늦은 편은 아니었다. 당시 영화계는 이십 대 후반에 들어와도 주연을 맡을 수 있는 구조였고, 무대 경력이 오히려 강점으로 쓰였다.

은막의 여왕

출연작이 60여 편이다. 주연과 조연을 오갔다.

조연에서 평가가 높았다. 중심에 서지 않아도 존재감이 크다는 말이 반복해서 따라붙었다.

맡은 인물의 폭이 넓었다. 기생부터 어머니까지 한 가지 유형에 묶이지 않았다.

당시 여배우의 활동 기간은 짧았다. 결혼이나 나이를 이유로 화면에서 사라지는 일이 흔한 시기에 오래 남은 편이다.

텔레비전에도 나왔다. 영화 출연이 줄어든 뒤에는 드라마로 자리를 옮겼다.

영화에서 방송으로 넘어가는 흐름이 그 무렵 굵어졌다. 제작 편수가 줄면서 배우들이 안방극장 쪽으로 이동한 시기다.

1980년대 이후로는 뜸해졌다. 활동을 줄인 뒤 이십 년 가까이 조용히 지냈다.

은퇴를 공식적으로 알리지는 않았다. 출연이 자연스럽게 줄어들면서 화면에서 멀어진 형태다.

마지막까지 그 태도가 이어졌다. 부고를 알리지 말라는 유언도 활동을 접는 방식과 닮아 있다.

자주 묻는 질문

도금봉은 언제 사망했나요?

2009년 6월 3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도금봉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8세였고, 1930년 8월 27일에 태어났습니다.

도금봉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도금봉 사망 원인은 노환입니다. 서울의 한 병원에서 세상을 떠났고, 알리지 말라는 유언이 있어 부고는 며칠 뒤에야 전해졌습니다.

본명은 무엇인가요?

정옥순입니다. 1950년 악극단에 들어갈 때는 지일화라는 예명을 썼고, 1957년 영화로 옮기면서 도금봉으로 바꿨습니다.

향년이 76세나 79세로 적힌 자료도 있습니다.

자료마다 생년이 다르게 적혀 있기 때문입니다. 이 글은 1930년 8월 27일생을 기준으로 만 나이를 적었고, 다른 기록과는 한두 살 차이가 납니다.

데뷔작은 무엇인가요?

1957년 영화 「황진이」입니다. 그전에는 1950년부터 악극단에서 연극배우로 활동했고, 영화로 옮기면서 이름도 함께 바꿨습니다.

부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