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혜경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산장의 여인」 가수
가수 권혜경이 2008년 5월 25일 세상을 떠났다. 권혜경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7세였고, 사인은 오래 앓아 온 지병이다. 1957년 「산장의 여인」을 부른 가수다.
- 사망일 — 2008년 5월 25일
- 사망 원인 — 지병
- 향년 — 77세 (1931년생)
- 본명 — 권오명
- 대표곡 — 「산장의 여인」(1957)

목차
권혜경 프로필
| 이름 | 권혜경 |
|---|---|
| 본명 | 권오명 |
| 출생 | 1931년 · 강원 삼척 |
| 사망 | 2008년 5월 25일 (향년 77세) |
| 사인 | 지병 |
| 직업 | 가수 |
| 데뷔 | 1956년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가수 3기 |
| 대표곡 | 「산장의 여인」(1957) |
평생 혼자 살았다. 결혼하지 않고 노래와 봉사로 시간을 보냈다.
권혜경 사망 원인
권혜경 사망 원인은 오래 앓아 온 지병이다. 2008년 5월 25일 오후 세상을 떠났다.
병을 얻은 시기가 이르다. 1959년에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았고, 뒤에는 후두암 선고까지 받았다.
가수에게 후두암은 치명적이다. 목소리를 쓰는 일인데 목에 병이 온 셈이라, 활동이 크게 제약됐다.
투병이 오십 년 가까이 이어졌다. 스물여덟에 시작된 병을 일흔일곱까지 안고 살았다.
당시 보도는 지병 악화로 전했다. 어느 한 가지를 직접 사인으로 특정하지는 않았다.
권혜경 사망 이후
노래와 봉사가 함께 기록됐다. 부고 기사 대부분이 대표곡과 교도소 위문공연을 나란히 적었다.
「산장의 여인」은 계속 불린다. 발표한 지 일흔 해 가까이 지났지만 옛 가요를 다루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는다.
강원도에 노래비가 있다. 출신지와 노래를 기리는 표지가 세워져 있다.
노래비는 지역이 기억하는 방식이다. 전국적으로 알려진 곡이면서 출신지가 분명한 경우에 세워지는 편이다.
활동 기간에 비해 곡이 적다. 병 때문에 무대에 서지 못한 기간이 길어, 남긴 음반 자체가 많지 않다.
1950년대 가요의 음원은 상태가 고르지 않다. 원반이 남지 않은 경우가 많아, 지금 듣는 음원은 뒤에 복각한 것이 대부분이다.
방송국 전속 가수
193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다. 본명은 권오명이다.
1956년에 뽑혔다.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가수 3기다.
방송국이 가수를 직접 뽑던 시기다. 기획사가 없던 때라 방송사 전속이 곧 데뷔였고, 기수별로 이름이 정리된다.
이듬해 음반을 냈다. 데뷔곡이 곧 대표곡이 되는 경우는 흔치 않다.
전속 제도는 방송과 음반을 묶어 두었다. 방송에서 부른 노래가 그대로 음반이 되고, 음반이 다시 전파를 타는 구조였다.
경쟁이 지금과 달랐다. 뽑히는 인원 자체가 적어, 전속이 되는 순간 활동 기회가 보장되는 편이었다.
1950년대 후반은 가요가 자리를 잡던 때다. 전쟁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음반 산업이 다시 움직이기 시작한 시기와 겹친다.
「산장의 여인」
1957년에 발표했다. 이 한 곡이 이름을 대신한다.
산속에 홀로 있는 사람을 노래한다. 느린 박자에 쓸쓸한 정서가 얹힌 곡이다.
- 1931년 — 강원 삼척 출생
- 1956년 —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가수 3기
- 1957년 — 「산장의 여인」 발표
- 1959년 — 심장판막증 판정
- 1950년대 말부터 — 교도소 위문공연 시작
- 2008년 5월 25일 — 사망 (향년 77세)
병을 얻은 시기와 겹친다. 노래가 알려진 직후에 판정을 받았기 때문에, 전성기와 투병의 시작이 거의 같은 지점에 있다.
가사가 본인의 처지와 겹쳐 읽혔다. 오래 앓으며 혼자 지낸 삶이 알려지면서 노래를 듣는 방식도 달라졌다.
오십 년의 위문공연
전국 교도소를 돌았다. 오십 년 동안 수백 차례 무대에 섰다.
노래만 한 것이 아니다. 강연을 함께 하며 재소자들을 만났다.
수인들은 그를 어머니라고 불렀다. 한두 해가 아니라 세대를 넘기며 이어진 방문이었다.
대가를 받는 무대가 아니었다. 병을 안고 다니면서도 일정을 지켰다는 점에서 기록으로 남았다.
가수로서의 경력과 분리되지 않는다. 히트곡이 하나인 가수의 이름이 오래 기억되는 이유가 여기에도 있다.
말년에는 거동이 어려웠다. 병세가 깊어지면서 위문공연도 계속하지 못했다.
기록이 많이 남지는 않았다. 언론에 알리는 방식으로 한 일이 아니어서, 횟수와 기간이 부고 기사에 와서야 정리됐다.
교도소 공연은 무대 조건이 나쁘다. 음향 설비가 갖춰지지 않은 곳이 많아, 목에 부담이 큰 환경에서 노래해야 했다.
한 곡만 남긴 가수로 분류되기도 한다. 다만 활동의 무게를 음반 수로만 재면 이 경력은 절반도 설명되지 않는다.
자주 묻는 질문
권혜경은 언제 사망했나요?
2008년 5월 25일 오후 세상을 떠났습니다. 권혜경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77세였고, 1931년 강원도 삼척에서 태어났습니다.
권혜경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권혜경 사망 원인은 오래 앓아 온 지병입니다. 1959년 심장판막증 판정을 받았고 뒤에는 후두암 선고까지 받아 오십 년 가까이 투병했습니다.
본명은 무엇인가요?
권오명입니다. 1956년 서울중앙방송국 전속 가수 3기로 뽑히면서 활동을 시작했고 이후 권혜경이라는 이름으로 노래했습니다.
대표곡은 무엇인가요?
1957년 「산장의 여인」입니다. 데뷔 이듬해에 낸 곡이 그대로 대표곡이 됐고, 지금도 옛 가요를 다루는 자리에서 빠지지 않습니다.
교도소 위문공연은 무엇인가요?
전국 교도소를 돌며 오십 년 동안 수백 차례 연 공연입니다. 노래와 강연을 함께 했고, 재소자들 사이에서 어머니라고 불렸습니다.
참고한 자료
- 서울신문, 「부고 · 「산장의 여인」 가수 권혜경씨」
- 한국경제, 「산장의 여인 권혜경씨, 77세 지병으로 별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