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일해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한국영화 1세대 미남배우

배우 김일해가 2004년 7월 11일 세상을 떠났다. 김일해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97세였고, 사인은 노환이다. 1935년에 데뷔해 일흔여덟에 주연을 맡은 한국 영화 1세대 배우다.

  • 사망일 — 2004년 7월 11일
  • 사망 원인 — 노환
  • 향년 — 97세 (1906년 12월 20일생)
  • 본명 — 김정석
  • 데뷔 — 1935년 영화 「춘풍」과 「살수차」
김일해 사망 원인과 프로필 — 1906년 출생, 2004년 향년 97세로 별세한 한국 영화 1세대 배우

김일해 프로필

이름김일해 (金一海)
본명김정석 (金正錫)
출생1906년 12월 20일
사망2004년 7월 11일 (향년 97세)
사인노환
직업영화 배우
데뷔1935년 영화 「춘풍」 · 「살수차」
대표작「오몽녀」(1937) · 「순정해협」(1937)

활동 기간이 예순 해를 넘는다. 일제강점기에 데뷔해 1984년까지 화면에 이름을 올렸다.

김일해 사망 원인

김일해 사망 원인은 노환이다. 2004년 7월 11일 아흔일곱에 세상을 떠났다. 특정한 병명이 따로 전해지지는 않는다.

말년에는 활동을 접은 상태였다. 1984년 출연을 끝으로 화면에 나오지 않았고, 이후 이십 년은 공개된 기록이 거의 없다.

같은 세대 배우 대부분이 앞서 세상을 떠난 뒤였다. 1930년대에 함께 데뷔한 사람들 가운데 2000년대까지 생존한 인물은 손에 꼽힌다.

부고가 길게 다뤄지지 않았다. 은퇴한 지 오래된 원로의 죽음이 짧게 처리되던 시기라, 당시 기사는 몇 줄에 그쳤다.

김일해 사망 이후

이름이 한국 영화사의 첫 장에 남았다. 1935년은 한국 영화에 소리가 들어온 해이고, 그 시기에 데뷔한 배우가 2004년까지 살아 있었다는 사실 자체가 기록으로 다뤄진다.

필름은 대부분 남지 않았다. 1930년대 조선 영화 가운데 지금 볼 수 있는 작품은 극히 적어, 데뷔 무렵의 연기를 직접 확인할 방법이 없다.

「오몽녀」는 예외에 가깝다. 오랫동안 사라진 것으로 알려졌다가 필름 일부가 뒤늦게 확인되면서, 그 세대를 이야기할 때 빠지지 않는 작품이 됐다.

기록보다 이름이 먼저 사라졌다. 출연작 목록은 남았지만 영상이 없어, 대중이 그를 떠올릴 통로가 사실상 끊겨 있다.

초기 한국 영화를 연구할 때 그의 증언이 인용되는 경우가 있다. 1930년대 촬영 현장을 직접 겪은 사람이 거의 남지 않아, 생전에 남긴 회고가 자료로 다뤄진다.

예명을 얻은 자리

본명은 김정석이다. 1906년 12월 20일 경기도 수원 남양에서 태어났다.

젊어서 일본으로 건너갔다. 교토에서 중학을 마친 뒤 스무 살 무렵부터 현지 영화사에서 배우 일을 시작했다.

김일해라는 이름은 「살수차」에서 처음 썼다. 본명 대신 예명을 올린 것이 이때이고, 이후 평생 이 이름으로 불렸다.

일본에서 배우고 조선에서 데뷔한 경로다. 영화 인력을 길러 내는 곳이 조선에 없던 시기라, 이 세대에는 같은 길을 밟은 사람이 여럿 있다.

미남 배우로 불렸다

1937년이 분기점이다. 「오몽녀」와 「순정해협」에 잇따라 나오면서 이름이 알려졌다.

「순정해협」에서는 주인공 영철을 맡았다. 이 작품으로 미남 배우라는 수식이 붙었고, 한동안 그 이미지로 배역이 들어왔다.

  1. 1906년 12월 20일 — 경기도 수원 남양 출생
  2. 1920년대 — 일본에서 배우 활동 시작
  3. 1935년 — 「춘풍」 · 「살수차」로 조선 영화 데뷔
  4. 1937년 — 「오몽녀」 · 「순정해협」으로 인기
  5. 1984년 — 「장남」 주연, 78세
  6. 2004년 7월 11일 — 사망 (향년 97세)

「오몽녀」는 나운규가 연출한 마지막 작품이다. 나운규는 그해 세상을 떠났고, 이 영화는 그 세대가 넘어가는 지점에 놓인다.

일흔여덟의 주연

1984년 영화 「장남」에 주연으로 나왔다. 그때 나이가 일흔여덟이다.

한국 영화 최고령 주연 기록으로 남아 있다. 조연이 아니라 극을 끌고 가는 자리였다는 점에서 기록의 무게가 다르다.

복귀에 가까운 출연이었다. 1960년대 후반 이후로는 작품이 거의 없었고, 십수 년의 공백을 건너뛰고 다시 카메라 앞에 선 셈이다.

노인을 주인공으로 세운 영화가 드물던 때다. 가족 안에서 늙어 가는 사람을 정면으로 다룬 작품이라, 배역과 배우의 나이가 그대로 겹쳤다.

이 출연이 마지막이 됐다. 이후 스무 해를 더 살았지만 새 작품은 나오지 않았고, 「장남」이 필모그래피의 끝에 놓인다.

데뷔와 마지막 출연 사이가 마흔아홉 해다. 한 배우의 활동 구간이 조선 영화에서 1980년대 한국 영화까지 이어진 경우는 흔치 않다.

자주 묻는 질문

김일해는 언제 사망했나요?

2004년 7월 11일 세상을 떠났습니다. 김일해 사망 당시 나이는 향년 97세였고, 1906년 12월 20일에 태어났습니다.

김일해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김일해 사망 원인은 노환입니다. 아흔일곱까지 살았고 특정한 병명이 따로 전해지지는 않습니다. 1984년 출연을 끝으로 활동을 접은 상태였습니다.

본명은 무엇인가요?

김정석입니다. 1906년 경기도 수원 남양에서 태어났고, 예명 김일해는 1935년 영화 「살수차」에 출연하면서 처음 썼습니다.

데뷔작은 무엇인가요?

1935년 「춘풍」과 「살수차」입니다. 그전에는 일본에서 배우로 일했고, 이 두 작품으로 조선 영화계에 처음 이름을 올렸습니다.

최고령 주연 기록이 무엇인가요?

1984년 영화 「장남」입니다. 일흔여덟에 주연을 맡아 한국 영화 최고령 주연으로 기록됐고, 이 작품이 마지막 출연이 됐습니다.

참고한 자료

  • 경기도메모리 디지털 아카이브, 「김일해」
  • 위키백과, 「김일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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