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노식 사망 원인 나이 프로필 「용팔이」 액션을 만든 배우
영화배우 박노식이 1995년 4월 3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다. 박노식 사망 당시 나이는 65세, 사인은 오래 앓던 지병이었다. 「용팔이」 시리즈로 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떠받친 배우다.
- 사망일 — 1995년 4월 3일
- 사망 장소 —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
- 사망 원인 — 지병 (당뇨병과 천식 합병증)
- 향년 — 65세 (1930년 2월 4일생)
- 당시 활동 — 1980년대 후반 이후 사실상 은퇴 상태

목차
박노식 프로필
| 이름 | 박노식 (朴魯植) |
|---|---|
| 출생 | 1930년 2월 4일, 전라남도 여수 |
| 사망 | 1995년 4월 3일, 서울 (향년 65세) |
| 사인 | 지병 (당뇨병과 천식 합병증) |
| 직업 | 영화배우 · 영화감독 · 제작자 |
| 데뷔 | 1955년 무렵, 영화 「격퇴」 |
| 활동 기간 | 1950년대 중반 ~ 1980년대 |
| 대표작 | 「격퇴」(1955) · 「5인의 해병」(1961) · 「다이얼 112를 돌려라」(1962) · 「현금은 내 것이다」(1965) · 「메밀꽃 필 무렵」(1967) · 「인간 사표를 써라」(1971) · 「방범대원 용팔이」(1976) · 「돌아온 용팔이」(1983) |
| 수상 | 청룡상 남우주연상 5회, 대종상 남우주연상 |
출연 편수는 자료에 따라 268편에서 900여 편까지 벌어진다. 주연만 세느냐 조·단역까지 넣느냐의 차이인데, 어느 쪽으로 세도 같은 세대에서 손꼽히는 다작 배우였다.
박노식 사망 원인
박노식 사망 원인은 지병이다. 오래 앓아 온 당뇨병에 천식이 겹치면서 몸이 급격히 나빠진 것으로 전해진다.
말년에는 병으로 바깥 활동을 거의 접은 상태였다. 1995년 4월 3일 오후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에서 숨을 거뒀다. 병원이 아니라 집에서 맞은 죽음이었다.
박노식 사망 소식과 마지막 나날
박노식 사망 소식이 전해지자 영화계는 한 시대가 닫혔다는 반응을 내놓았다. 1960~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떠받치던 이름이었기 때문이다.
1980년대 들어 출연이 크게 줄었다. 액션영화 제작 자체가 줄어든 데다 직접 만든 영화들이 잇따라 흥행에 실패하면서 활동 폭이 좁아졌다. 마지막 몇 해는 병과 함께 조용히 보냈다.
출생지 표기는 자료마다 갈린다. 전남 여수로 적은 자료가 있고 순천으로 적은 자료도 있다. 이 글은 지역 자료를 따라 여수를 앞세우되 다른 표기가 있다는 점을 함께 적는다.
박노식은 어떤 배우였나
그를 설명하는 말은 몸이다. 대역을 거의 쓰지 않고 직접 뛰고 부딪혔고, 그 거친 질감이 그대로 화면에 남았다. 세련된 액션이 아니라 사람 냄새 나는 액션이었다.
전라도 억양을 그대로 쓴 것도 특징이다. 표준어 발성이 당연하던 시기에 사투리를 무기로 삼은 배우는 드물었고, 그래서 그가 맡은 인물은 어디서 온 누구인지가 분명했다.
배우에만 머물지도 않았다. 1971년부터 직접 제작하고 연출하며 열세 편을 만들었다. 스스로 기획하고 주연까지 맡는 방식은 당시 충무로에서 흔한 일이 아니었다.
박노식 약력 — 데뷔부터 마지막까지
여수에서 악극단으로 — 데뷔 이전
1930년 전라남도에서 태어났다. 악극단에 들어가 연극 「나그네 설음」의 주연을 맡으면서 연기를 시작했다. 정식 교육이 아니라 무대에서 몸으로 배운 쪽이다.
영화 데뷔 — 1950년대 중반
이강천 감독의 「격퇴」로 스크린에 나섰다. 데뷔 연도는 자료에 따라 1955년과 1956년으로 갈린다. 이듬해부터 액션 계열 배역으로 빠르게 이름을 알렸다.
전성기 — 1960~1970년대
1961년 「5인의 해병」을 시작으로 청룡상 남우주연상을 다섯 차례 받았다. 아시아영화제 최우수 남우주연상과 대종상 남우주연상·조연상도 그의 몫이었다. 1967년 「메밀꽃 필 무렵」처럼 액션이 아닌 작품에서도 좋은 평을 받았다.
제작과 말년 — 1971~1995년
1971년 「인간 사표를 써라」를 직접 제작·감독·주연했다. 이후 열세 편을 연출했으나 흥행은 고르지 않았다. 1980년대 후반 이후 활동이 끊겼고 1995년 4월 세상을 떠났다.
- 1930년 2월 — 전라남도 여수 출생
- 1955년 무렵 — 영화 「격퇴」로 데뷔
- 1961년 — 「5인의 해병」으로 청룡상 남우주연상
- 1967년 — 「메밀꽃 필 무렵」 출연
- 1971년 — 「인간 사표를 써라」 제작·감독·주연
- 1976년 — 「방범대원 용팔이」
- 1995년 4월 3일 — 지병으로 사망 (향년 65세)
박노식의 가족과 아들 박준규
배우 박준규가 아들이다. 부자가 모두 배우로 이름을 알린 사례이며, 아들이 방송에서 아버지를 회고할 때마다 관련 기사가 이어진다.
세대가 바뀐 뒤에도 그의 이름이 계속 불리는 데에는 아들의 활동이 겹친 몫이 있다. 다만 생존한 유족이 있는 사안이라 이 글은 공개적으로 확인된 범위까지만 적는다.
「용팔이」 시리즈와 한국 액션영화
「용팔이」는 1970년대 한국 액션영화를 대표하는 연작이다. 그가 연기한 용팔이는 힘은 세지만 어딘가 어수룩하고 정이 많은 인물이었다. 완벽한 영웅이 아니라 동네에서 볼 법한 사내라는 점이 관객을 끌었다.
1976년 「방범대원 용팔이」를 비롯해 여러 편이 이어졌고, 1983년 「돌아온 용팔이」는 그가 직접 연출했다. 시리즈가 계속 나왔다는 것 자체가 흥행이 뒷받침됐다는 뜻이다. 이 캐릭터는 지금도 그의 이름과 붙어 다닌다.
박노식 대표작 정리
- 1955년 — 「격퇴」, 영화 데뷔작
- 1957년 — 「나는 너를 싫어한다」
- 1961년 — 「5인의 해병」
- 1962년 — 「다이얼 112를 돌려라」
- 1965년 — 「현금은 내 것이다」
- 1967년 — 「메밀꽃 필 무렵」
- 1971년 — 「인간 사표를 써라」, 제작·감독·주연
- 1976년 — 「방범대원 용팔이」
- 1983년 — 「돌아온 용팔이」, 직접 연출
자주 묻는 질문
박노식은 언제 사망했나요?
1995년 4월 3일 서울 도봉구 방학동 자택에서 세상을 떠났습니다.
박노식의 사망 원인은 무엇인가요?
사망 원인은 지병입니다. 오래 앓던 당뇨병에 천식이 겹치면서 건강이 나빠진 것으로 전해집니다.
박노식은 몇 살에 사망했나요?
1930년 2월 4일에 태어나 1995년 4월 3일 사망했으므로 만 65세입니다.
박노식과 박준규는 어떤 관계인가요?
배우 박준규가 아들입니다. 부자가 모두 배우로 활동한 사례로 자주 언급됩니다.
「용팔이」는 누가 주연한 영화인가요?
배우 박노식입니다. 1970년대에 이어진 연작으로, 1983년 「돌아온 용팔이」는 직접 연출하기도 했습니다.